“우리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오늘도 민족중흥의 최일선에 서서 겨레와 함께 일하며 산다”로 시작되는 공무원윤리헌장은 1980년 12월 29일 대통령훈령 제44호로 선포되었다.
헌장은 이어 “첫째, 우리 공무원은 민족중흥에 앞장선 영광스러운 길잡이임을 자부한다. 둘째, 우리 공무원은 창의와 근면, 친절과 공정으로 국민의 신임을 얻는다. 셋째, 우리 공무원은 청렴결백하여 겨레의 공복으로 국가에 봉사한다”라는 내용으로 ‘공무원의 신조’를 확대·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우리 헌법 제7조 2항에도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항들보다 앞에 나와 있다. 그만큼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대통령제를 택한 이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바탕이라는 원칙이 깔려있다.
공직의 매력은 대단하다. 그것은 상급 관청으로 올라갈수록 더한다. 그렇지만 현상학자 랠프 험멜의 눈에 비친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였다고 혹평한다. 그는 그의 저서 ‘관료제의 경험’에서 “공무원은 사람 아닌 사례(case)를 다루고, 정의·자유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통제와 능률만 생각하고, 국민 봉사기구가 아니라 지배기구”라고 했다. “공무원과 정상인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이다. 홍보처 측은 “지난 5년간 언론과 적대적인 관계로 정책 동력이 퇴색됐고 국민에 대한 정부 홍보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특히 홍보처의 한 직원은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는 자조 석인 말도 했다.
이처럼 요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철학을 바꾸었다는 싫은 소리를 듣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책도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다. 지금처럼 공무원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면서까지 속도전을 펼치는 것은 새 정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지난 세월 공무에 잠깐 몸을 맡겼을 때, 정치적인 관료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일부 관료들은 출세와 승진을 위해서라면 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선거 운동에 뛰어드는 경우를 보아왔다. 그들은 비아냥거리는 얘기를 들을지 몰라도 일단 출세와 승진에 따른 실익은 영원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공복(公僕)이라는 말은 행정학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죽은 단어가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는 오랜 관료제의 역사를 갖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이 될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넘기겠다는 청년실업자가 많다. 공무원이 요즘 최고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 신분과 정년 보장 덕분일 것이다.
신분·정년 보장은 원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이 정실 인사와 엽관제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래서 제주 출신 젊은이들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서울 학원가로 몰려가고 있다.
중앙과 지방을 합쳐 95만여 명의 공무원이 있다. 관료제는 ‘엄격한 위계질서’, ‘규정되고 공식회된 업무절차’, ‘명확한 업무경계’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관료제는 한 치의 낭비 없이 일을 수행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만들어 낸 분업체계이다.
지금 대선이 끝난 관가가 일손을 놓은 채 차기 정부의 조직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정당한가, 묻고 싶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