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겨울 여자
[세평시평] 겨울 여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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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걸으며 ~ ~ ‘하얀 겨울에 떠나요’로 시작하는 ‘겨울 여자’라는 가요가 인기를 얻은 때가 있었다.

‘하얀 겨울’과 ‘떠난다’는 의미가 내포하는 슬픈 서정과 이별이라는 언어가 빚어내는 마력 과 저음가수(최백호)의 감미로운 음성이 그 당시 젊은 여성들뿐 아니라 젊은 남성들에게도 대단한 인기였다.

‘겨울여자’라는 어느 인기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었고,  이 작품이 영상화 되어 오래 상영되기도 하였다. 

그 영화의 겨울여자 역을 맡은 배우가 장미희 이였다.  자신의 연인을 전처와 재회하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연인의 곁을 떠나는 여주인공역을 맡은 장미희의 청초한 마스크와 아프고 슬픈 연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겨울여자’란 도대체 어떤 여자를 의미할 수 있을까? 이는 분명 생소한 언어다.

‘봄 처녀’ ‘여름여자’라면 어느 정도 우리 상식에 어울리는 단어지만 ‘겨울 여자’란 우선 떠오르는 감이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같기도 하고, 눈처럼 하얀 여자 같기도 하고, 여행길에 허름한 커피숍에서 혼자 커피 잔을 티 테이블에 놓고 앉아 있는 여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겨울여자’라면 슬픔과 아픔을 뒤로하고 자신의 조그마한 삶의 여백도 모두 포기할 수 있는 여인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없는 것 까지 다 주어버리고, 몸서리칠 수뿐이 없는 가장밑바닥세상에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 살아있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황홀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여성상이다.

이런 여성은 소설 속에서 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서로 서로 에게 분명히 있다.

그래서 대지 소설을 쓴 미국의 대문호 펄벅여사는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자연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겨울에 대한 원초적인 의미는 비정과 냉혹한 의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겨울여자’라면 비정한 사람, 정과 대칭되는 뜻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The sun also rises주인공 애쉴리 사랑보다 르네상스적  냄새가 풍기는 니콜레트 사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밤을 좋아한다. 일년 중 밤에 글을 읽을 수 있을 때도, 기나긴 겨울밤이고, 밤참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겨울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제주시는 겨울눈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눈 내리는 겨울밤을 동경하게 되고 더욱 겨울운치에 빠지고 싶어진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 나는 눈발이 날리는 밤거리를 거닐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굳이 친구를 만나지 않더라도 눈을 맞으면 끝없이 걷는 이 밤은 마치 성찬(盛饌)이라도 대접 받는 것처럼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손을 푹 주머니에 집어넣고 휘날리는 눈발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숱한 행인들의 곁을 지나면서 ‘겨울 여자’같은 사랑을 생각한다.

가로등 불빛에 휘날리는 차가운 눈발을 밟으면서 지난해 겪었던 슬픈 사연들이 떠오른다. 그 사연들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슬픔과 고독이 마음속 깊이 파문을 일으킨다.

인간은 영원히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새삼 확인하며 쓸쓸히 걷던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가로등 불빛아래서 호빵을 파는 포장마차 여인을 본다.

나는 이 여인이 젊었을 때 ‘겨울여자’ 애한을 거쳐서 성숙하고 강인한 생활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망상을 해본다.

조금 전까지도 외로움과 고독과 한기로 몸부림치던 나는 포장마차에서 호빵을 파는 여인에서 풍기는 생활여백의 향기에 고무되어 조용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 지금은 흰눈이 내려서 쌓여 내 슬픔위에 고이 서리지만, 내일이면 이 서리도 ‘겨울여자’ 향기로 녹을 테지…‘겨울여자’의 빛나는 지성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여성으로서의 감성이 채색되어 경이롭고, 호소력을 볼 수 있고, 향기롭다.

이런 향기가 있는 한 우리사회는 초라 할 수가 없고, 또한 가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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