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다시 진보를 이야기 하자
[세평시평] 다시 진보를 이야기 하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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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김수영 시인은 일찍이 혁명의 고독에 대해서 노래했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를 논의할 때 김수영을 거론한다.

우리나라는 여러 번의 혁명과 쿠데타, 민중 항쟁을 거치면서 숱한 피를 뿌린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와중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거나 독재 권력에 의해 억압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대선 결과를 바라보면서, 진보는 결코 재생할 기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가? 진보와 보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양 날개이다. 어느 한쪽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다른 한쪽이 독주해서야 건전한 사회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대선은 진보 쪽에는 참담한 결과를 안겼다. 진보의 참패는 참여정부 대한 유권자들의 냉엄한 심판에 원인이 있겠으나, 시대의 흐름과 민심을 읽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실책도 컸다. 진보 쪽은 허둥대지 말고 패배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직시하고 민심을 다시 읽어야 한다. 책임공방에만 빠져 있지 말고, 조직을 추슬러 거듭 태어나는 노력과 새 출발의 각오를 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 좌파 사상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출발한다. 일본 유학파들이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들에게 좌파 이론은 한마디로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손쉽게 현실에 적용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좌파 사상은 광복 이후 좌우 대립 속에서 한껏 극단주의로 치달은 뒤 반공 정권 속에서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 1960,70년대 좌파 사상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다. 이제 우리는 이번 대선 결과에 승복하고, 진보 진영은 뼈를 깎는 자성이 있어야 한다. 환골탈태하려는 쇄신의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미래는 의외로 빨리 구름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도 있다.

이번 대선결과에 나타난 유권자의 의식은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다. 진보는 결코 독선이 아니다. 엄숙하거나 무겁지 않다. 즐겁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길에 함께 하자고 내미는 손은 따뜻하다. 그래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기다려줄 수 있다. 다시 진보를 이야기하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진보를 찾아내고 실천하자.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할 일은 너무 많다. 패배는 그래서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다.

대선 후 경향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자신의 이념성향을 보수로 밝힌 응답자가 24.7%인 데 반해 진보는 41%로 나타났다. 20대에서 40대 사이를 보면 진보적인 유권자가 절대다수이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조태일 시인의 ‘국토 서시’ 일부이다.

조태일은 1974년 고은, 황석영, 염무웅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진보문인단체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설을 주도했고,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70년대와 80년대에 저항해 <국토> <가거도> <자유가 시인더러>라는 판매금지 시집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아아, 당시 판매금지를 당한 시집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제 우리 모두 다시 진보를 이야기 하자.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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