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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해년(丁亥年) 한 해가 저문다. 어느 해인들 좋은 일만 있었던 해는 없었다. 그러나 올해처럼 기쁨과 슬픔이 더 교차했던 해도 없었던 것같다. 인간의 가치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회, 가정과 이웃이 무탈한 사회, 보다 나은 경제적인 삶은 누구나 염원하는 새해 벽두의 소망이다. 하지만 올해도 그러한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 3월 서귀포시 양지승 어린이 살해 사건은 인면수심의 극치였다.천진난만한 아홉 살 어린이의 비참한 주검 앞에 분노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살인 사건은 두 달이 멀다하고 발생했다. 지난 5월 제주시내 가정집에 물건을 훔치려고 침입한 강도에 의해 여주인이 무참히 살해됐다. 또 3개월 뒤에는 퇴근길 어린이집 여교사가 같은 마을 한 주민에 의해 살해당했다. 어떤 이유로도 살인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하고, 삶이 괴로워도 최상위 가치인 사람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는 살인 행위 만은 절대 안 된다. 범죄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평온과 안락은 유지될 수 없다. 흉악 범죄가 날뛴 해는 올해로 끝나야 한다. 새해는 무엇보다 인간중시의 해,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는 해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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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시련의 계절이었다. 잇단 흉악 범죄 도 범죄지만, 예상치 못한 태풍 ‘나리’가 온 섬을 강타해 수 많은 인명 피해와 엄청난 재산 피해를 냈다. 순식간에 가옥이 침수되고, 농경지가 유실된 주민들은 황당스런 재난앞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재해로만 치부할 수 없는 재난이었다. 제주시 병문천 등 사람이 만든 하천 시설물 주변에서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 곳곳의 농경지 유실 또한 비과학적인 도로포장이 더 큰 화를 불렀다. 지금 우리는 일찍이 누려 보지 못한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오히려 선인들의 지혜를 따라 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 극복에 보여준 도민들의 힘은 위대했다. 많은 도민이 스스로 피해 지역에 나가 복구작업을 도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래도 피해 주민들은 고통과 슬픔을 뒤로 하고 재난 극복의 의지를 불태웠다. 어떤 불행도 스스로 이겨내려는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은 그나마 불행 속에 얻은 교훈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항구적인 복구를 하는 일이다. 제주도는 하천과 교량, 도로와 배수로 등의 치수에 반드시 과학적인 공법을 도입해 유사한 피해가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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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는 경제적으로도 힘든 해였다. 풍수해 피해에다 감귤 가격마저 곤두박질 쳐 생산농민은 물론 대부분 도민이 실의에 빠졌다. 이대로 가면 제주경제는 기댈 곳이 없다. 지난해 제주지역 총생산액은 전국 골찌였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특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더 없이 고달픈 해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해군기지로 인한 도민사회의 갈등과 행정력의 소모도 큰 한 해였다. 제주도는 올해의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내년에는 전국 최하위 경제 규모를 중상위로 끌어 올리고, 직장이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주는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누구나 그 동안의 삶을 반추하기 마련이다. 보람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할 사람도 많겠지만, 올해의 경우 너무 힘든 삶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해는 다시 떠 오른다. 암울했던 올 한 해는 지는 해와 함께 털어버리고, 좋은 일만 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 새해 새아침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