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정철) 예로부터 우리는 효도를 인간 행실의 근본으로 삼고 살아왔다. 이것이 우리의 선량한 풍속이라고 뿌듯한 자긍심을 간직했었다. 그리하여 많은 속담과 격언들이 만들어졌고, 거기에서 마르지 않은 샘물 같은 지혜를 얻었다. 효녀 지은(知恩)의 이야기와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병든 어머니를 구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줄곳 눈물을 흘렸다. 부모은중경을 외고, 효도를 내용으로 한 민요를 노래하며 심성을 가다듬었다.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침소를 살펴서 불편함이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일을 혼정신성(昏定晨省)이라 하였다. 이런 일이야말로 인간이 지니는 으뜸의 법칙으로 체득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 이르러 사랑은 시들며 우정의 잎사귀는 떨어지더라도, 부모를 섬기는 정성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곳에 우리들의 선량함이 스며 있었다. 그래서 어버이와 자녀들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울타리 안에는 끈질긴 생명력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생명력은 불변하는 자연의 섭리에서 나오는 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 패턴이 급격하게 변하는 가운데, 효도라는 어휘 자체가 추억의 유물로만 남아 있는 세태가 되어 버린 듯하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 풍요와 극단적 이기주의, 편이한 생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현대의 삶에서 혼정신성을 이야기한다면 자칫 정신 이상자로 취급받기 십상이리라. 더구나 60세 이상 부모들이 자식들과 동거하는 비율도 절반에 이르지 못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들이 진솔하게 만나는 시간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이겨 나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물질과 향락의 유혹에 이끌려 인간의 근본을 돌아보는 여유를 상실해 버리는 듯하다. 더욱이나 돈이 있어야 부모와 자식이 자주 만날 수 있다는 현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한국인구학회가 얼마 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60세 이상 부모의 소득이 1% 늘면 자식과 대면할 가능성은 2배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없으면 자식들도 부모를 외면하는 세태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료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따로 사는 부모들과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나는 기회가 세계에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자식의 별거는 더욱 가속화되어 가는 현상이다. 농촌과 도시로 갈라지는 가정뿐만 아니라, 같은 도회지에서도 자녀와 동거하는 부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노인 부모들의 마음 속에는 자녀들과 더불어 살고 싶은 소망으로 채워져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따로 살기를 고집하는 노인 부모도 사실은 자식들을 편하게 하려는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돌아오라 효자여, 해바라기 핀 마을 / 장 항아리 옆에서 모싯바구리 같은 머리를 이고 / 파파한 네 홀어미 기다림에 행여나 조바심 칠라.”(김관식)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조바심으로 자식을 기다리면서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매일의 바쁜 일과에 짓눌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파파 머리가 된 부모는 그저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모에게 돈이 없으면 자녀들도 외면하는 풍조가 썰물처럼 물러가야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리움의 정이 흐르는 것은 결코 낡은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베풀어 주는 생명력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