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씨앗 뿌리는 자선나무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는 자선(慈善)의 시작을 ‘산타클로스’로 보는 인류학자들이 많다. 물론 인간의 영역에서다.
실제 산타클로스는 서기 270년 터키 출생의 사제다. ‘세인트 니콜라스’라는 이름이 미국식으로 ‘산타클로스’로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대주교가 된 후 가난한 집을 찾아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돈이나 양식을 두고 가는 선행을 계속했다.
선물을 주거나 자선을 베푸는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여기서 비롯됐다.
산타클로스 사랑의 씨앗은 이미 2000년 전에 뿌려졌다. 인류구원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사랑’이 그것이다.
죽음으로 성취한 예수의 인류구원은 지배나 핍박으로부터의 물리적 인류해방에 있지 않았다.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분열과 갈등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사랑과 평화를 이루는 정신적 구원에 있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다.
이러한 예수의 구원사업이 ‘산타클로스 자선 나무’를 키워낸 것이다.
개같이 벌고 정승같이 쓴다
오늘(25일)이 죽음으로 사랑을 실천했던 예수탄생을 기리며 기쁨 함께 나누는 성탄일(聖誕日)이다.
하늘에 영광을 돌리고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주는 날. 그래서 성탄절의 의미는 사랑을 나누는 기쁨과 평화에 있다하겠다.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말이 있다.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했던 말이다.
자칫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자 말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다. 남에 대한 배려나 사랑과는 거리가 있을 법한 논리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도 인간은 이웃을 기쁘게 하고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원초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기에 서구 자유주의 뿌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염려와 사랑에 있다고 했다.
일견 모순어법인 듯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악착같이 돈을 벌고 사회전체를 위해 유익하게 돈을 쓰라”는 데 기초하고 있다. “개같이 벌고 정승같이 쓰라”는 말에 다름아니다. 산타클로스가 되라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기부"
매해 이맘때면 차갑고 삭막한 사회에 온기를 더해주는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넘쳐난다.
자신은 월세 방에 살면서 10년 넘게 어려운 이웃을 위해 30억원을 내놓은 가수 김장훈.
“행복해지기 위해 기부 한다“고 했다. 그는 분명 가난한 부자다.
30년 구두닦이 명덕식씨는 2000년부터 매해 돼지 저금통을 깨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하고 있다.
“돈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천사처럼 돈 쓰고 싶다”며 6000억원을 기부했던 삼영화학의 이종환 회장. 270억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한 어느 실향민. 30년 노점상아저씨의 전 재산 대학 기증 등등, 참으로 훈훈하고 흐뭇하고 아름다운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차가운 겨울을 아랫목처럼 포근하게 녹이고 있다.
물론 어제 언론 보도처럼 수백억, 수천억 원대의 재산을 갖고 해외유람을 다니면서도 이웃돕기 성금은 고사하고 지방세까지 채납 했다가 출국금지 대상에 포함된 재력가들의 ‘털난 양심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양심에 털 난 검은 재력가보다도 남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내놓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는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