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친 영혼 기대일 곳은
누이야, 지난여름은 너무 무더웠다. 태양은 더없이 뜨거웠고 갈증은 더욱 심했다.
거기에다 나라는 이분법적 편가르기로 갈갈이 찢겨 나갔다. 미움과 증오의 용광로만 달아 올랐다.
그래서 타는 목마름으로 너의 크고 깊은 시원한 눈동자를 찾아 헤맸다. 거기에 빠져 때묻은 영혼을 씻고 싶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네 빛나는 예지와 맑고 아름다운 영혼에 기대어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데 만나지를 못했다.
베어 물면 자르르 군침 도는 과육(果肉)의 속살처럼 하얗고 향긋한 해맑은 웃음, 코스모스 허리처럼 가늘지만 바람을 슬기롭게 다스리던 네 지혜는 어디에 있었지?
죄업(罪業)에 허우적거리는 내 지친 영혼이 위로 받을 수 있는 포근한 가슴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이야.
그래서 불소주로 여름을 태웠단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하도 열불이 나서 불소주로 가슴을 태웠단다. 악다구니 퍼부으며 그렇게 여름을 보냈단다.
그래도 내 가슴은 아직도 욕지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슴엔 아직도 잡히지 않는 분노의 그을음만 거멓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누이야. 지난여름이 아무리 지겨웠고 잔인했다해도 그것은 이미 세월의 강물에 흘러 가버린 것을......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누이야, 9월이구나. 삽상(颯爽)한 소슬바람이 목에 감기는 가을이구나.
너무 높고 푸르러서 쳐다만 봐도 '쨍그렁' 깨어질 것 같은, 그래서 자꾸 눈시울이 촉촉해 지는 가을 하늘 아래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구나 누이야.
만나서 잘 익은 포도주에 취해 가슴을 짓누르는 멜랑콜리(melancholy.우울증)를 벗어 던지고 싶구나. 그래서 신명나는 내일을 노래하고 싶구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어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어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을 띄워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급한 것은 민생.경제 살리기
그런데 누이야, 나라가 걱정이다.
민생은 망가지고 경제는 끝 모르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이를 추슬러야 할 올곧은 정치는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사법개혁.군개혁.재벌개혁.입시개혁.수도이전.과거사 규명 등등, 지금 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담론은 지나치게 오만하고 독선적이다. 너무 선동적이고 공격적이다.
마치 붉은 완장을 차고 활개치는 용병집단들의 안하무인처럼 너무 살똥스럽다.
국가 중대사를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한꺼번에 해치우려는 조금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급한 것은 민생을 살리는데 있다. 경제를 일으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정치적 야욕에만 매달려 세월을 축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금 백성들의 울분은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 좌절이 분노로, 한숨이 독기로 변하고 있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냉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탈 권위'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변화의 패러다임을 대체 할만한 새로운 국가경영 리더십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정부의 정책추진력이 약화 된 것이 국정 난조의 원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부는 좋다. 그러나 먼저 백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정부가 더 좋다.
누이야, 이 가을에는 이런 정부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하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듯 희망차고 아름다운 나라를 그리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