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을 설명해 맞히는 TV노인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할머니에게 설명해야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당황한 할아버지는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
‘언제나 청춘’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노인들의 낱말을 설명해서 상대방의 빨리 맞히는 게임에서 나온 말이다. 모든 노인들의 부러워하는 장면이다. 모든 노인들이 건강과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장수는 인간의 오랜 꿈이지만 수명에도 질(質)이 있다. 병치레로 골골하며 노년을 보내 것은 오래 사는 의미가 무색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오래 사느냐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8세, 여자는 81세이고 남자는 75세이다. 1960년대의 평균수명이 여자는 53세, 남자는 51세이었으니 지금 50년도 안돼 여자는 28년, 남자는 24년을 더 살게 되었다. 얼마 전 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를 빌리면 질병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리며 사는 평균건강수명은 68세라고 한다. 평균수명과 비교해보면 보통10년을 갖가지질병에 시달리다 가는 셈이다.
그래서 “한국이 205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된다.”는 통계청의 예측전망은 우리마음을 무겁게 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05년도 9.1%에서 2050년에는 38.2%로 높아져 세계평균 16.2%의 갑절을 넘어설 것이라고 통계는 말하고 있다.
요즘 노인들은 이상적인 죽음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세간에 “9988234”라는 말이 나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고 죽는(死)것을 뜻한다.
며칠 전 한 중앙 일간지에서 77세 여자대법관이 치매남편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를 접했다. 치매남편을 돕기 위해 “여성최초 종신대법관” 자리를 미련 없이 내던진 미국의 샌드라데이 오코너(77)씨다. 남편의 옛 기억을 잃어 다른 치매여성과 사랑에 빠지자 “사춘기 소년 같다”며 남편의 정서적 안정을 찾았음으로 기쁘다는 그녀,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그의 사부곡(思夫曲)이 황혼이혼 증가로 “가정 붕괴”의 목소리가 높은 요즘에 우리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 크다.
우리나라에도 근년에 전 국민을 울린 할아버지 순애보(純愛譜)가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치매하는 아내를 돌보던 90대남편이 자식에게 부담 줄 것을 비관, 장례비를 남겨둔 채 78년을 해로한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목을 매 자살 했다.
전북익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7남매 키워낸 이 노인은 30년 전 농사일을 접고 자녀들이 사는 서울로 왔다. 서로 부모를 모시겠다는 7남매의 설득을 뿌리치고 집을 마련해 살아왔다.
자식들의 주는 생활비도 받지 않고 고물을 주워 생활해온 이 노인은 3년 전 막내아들의 간곡한 호소에 결국 막내아들 집으로 들어왔다. 막내아들은 미장일을 하고 며느리는 미싱공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금실 좋기로 소문난 이 노부부에게도 시련은 닥친다.
지난해에 아내에게 치매가 왔고 거기다 중풍까지 겹쳐 손발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다. 남편은 병든 아내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병 수발을 했다.
이른 새벽부터 손수 밥을 먹이는 것은 물론 대 소변을 받아내는 등 한 시도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내의 증세가 날로 심해지자 이 노인은 아내가 죽으면 함께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해온 것으로 알려 졌다. 노인은 찢은 달력 석장에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서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며 살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이 노 남편은 아내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자신도 방안 옷장 옷걸이에 철사로 목을 매 세상을 등졌다. 그는 유서와 함께 모아둔 250만원을 장례비로 남겼다.
앞으로 과학과 의학이 발달로 수명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그건 성인병환자로써 연장하는 것일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소망이자 염원이다.
치매는 거꾸로 교만한 인간더러 인간의 유한함을 겸허히 받아드리라고 하는 창조자의 꾸짖음일지도 모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