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웃기는 축제
[세평시평] 웃기는 축제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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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가장 나쁜 정치가는 누구냐?”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평론가가 있었다. “그것은 참 어려운 문제다. 이 자야말로 가장 나쁜 정치가라고 결정한 순간에 더 나쁜 자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니까.”

인용이 너무 부정적이고 야유가 섞인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야유 속에서 진실된 뜻을 알아듣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슬기가 아니겠는가? 이심전심이란 말이 아니라도 우리는 마음의 바탕에 흐르는 공감대를 믿고, 그것을 확대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중요한 선거를 앞에 두고 있다. “권력의 성(城)은 선거라는 축제 때 문을 연다. 그 때 비로소 성 밖에 웅성거리던 백성들은 성안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말참견도 하고, 때로는 성주를 바꾸기도 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다시 성문은 굳게 닫히고 만다.”(남재희) 우리는 지금 문이 열려 있는 성 안을 기웃거리며 말참견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겨울밤 문풍지 소리만도 못한 우리의 말참견으로는 아주 작은 메아리도 생겨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마디 말을 하는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우리의 중요한 선거를 두고 어떤 보도매체는 “이상한 대선”, “웃기는 대선”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축제가 어찌하여 우스운 것이 되었는가?

사실 “웃음”이라든가 “웃기는” 상황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웃음은 신뢰와 사랑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하는 활력을 되살려내는 능력을 갖는다. 복잡다단한 현대생활 속에서 웃음은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맛을 선사한다. 그래서 방송매체에서는 코미디, 개그 등의 프로그램이 중흥을 이루고 있다. 근래에는 “웃음치료”라고 해서 마음만이 아니라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데도 웃음은 대단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서 웃음의 의미는 상당히 변질되어 있다.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마라.” “거 참 우스운 일이네.” 이런 말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우리가 직감으로 깨닫고 있다.

“웃기는 대선”은 어떠한가? 우스운 모습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보통의 두뇌 활동으로는 몇 분이 입후보했는지 헤아리기조차 벅찰 상황이다. 원대한 포부를 간직한 분들이 많은 것은 반가운 일로 치부하기로 하자. 그렇지만 그들이 매일 쏟아내는 살인적인 말들은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 증오와 저주로 가득한 발표문에서 우리는 등골이 오싹함을 떨치지 못한다. 나라를 운영하려는 원대한 포부나 정책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조작, 사기, 음모, 고발, 수사, 반란 등등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섬뜩한 말들만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다.

문풍지 소리만도 못한 우리의 말참견은 교과서의 내용으로 끝맺음을 할 수밖에 없다. “가장 나쁜 정치가는 무관심한 유권자가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우리의 관심과 참여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순간을 앞에 두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즐거운 회상과 웃음의 삶을 마련하기도 하고, 혹은 괴로운 멍에가 되어 우리를 옭아매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축제의 방관자이거나 국외자일 수 없다. 희망과 아울러 용기, 슬기로움도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보배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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