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초ㆍ중ㆍ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 희망 직업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교사가 1위에 올랐다고 한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용(日用)할 양식(糧食)’을 구하고 있는 나에게, 모처럼 교직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해 오는 낭보(郎報)였다.
동시에 제자들인 아이들에게 과연 나는 바람직한 교사인가를 자문(自問)하며,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잡고 교사다운 교사가 되리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교단에 처음 선 1980년대만 해도 교사라는 직업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청운(靑雲)의 열혈 청년들에게 학교라는 울타리는 너무나 비좁았고, 평소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선생님들’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박봉(薄俸)의 남루(襤褸)함을 감내하면서 평생 아이들과 함께 할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나 역시 대학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졸업장에 끼어 덤으로 받은 교사자격증이 내 삶의 ‘라이선스’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어디 제 뜻대로만 되던가.
잠시 ‘외도’를 하긴 했지만 서랍 속 교사자격증을 꺼내 들고 사도(師道)의 길에 서게 되었고,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새 30여년의 족적(足跡)을 그 길 위에 남겼다.
그렇지만 사도의 길 위에서 나는 아직도 위태롭다.
아이들의 잠든 영혼을 일깨워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과연 교육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우리의 교육환경이 과연 내일의 주인공들을 길러내는 최적의 토양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괜히 잘못 든 길처럼 사도의 길이 낯설고 더욱 더 아득해진다.
선생님들을 존경하지 않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교실. 아이들의 인권이란 명분 아래 그들의 일탈을 제재하고 선도할 최소한의 권위마저 사라진 교단에서 전전긍긍해야 할 때마다 이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뇌한다.
그 뿐인가.
언제부터인가 학과공부는 사설학원이나 과외로 해결하고, 대신 학교에서는 졸거나 딴 짓만 일삼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업을 하다 보면, 교사로서의 보람과 긍지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 애면글면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괴감(自愧感)으로 절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교육현장의 일선에서 살아가는 나의 속내가 이러하기에, 요즘 아이들이 교직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는 설문조사의 결과는 뜻밖이었다. 과연 교사라는 직업을 선호하고 있는 아이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사들이라면 대부분이 겪고 있을 이런 심적 내홍(內訌)을 알고나 있는지, 알면서도 교사라는 지난(至難)한 직업에 제 한 몸 바치겠다는 사명감의 결단으로 교직을 소망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사도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능한 인재들이 교단을 선호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비록 사회적ㆍ경제적 지위는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교사로서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우고, 나아가 인간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교직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만에 하나 교직이 갖고 있는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교직을 선호한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야 할 청소년들이, IMF 외환위기가 초래한 국민적 트라우마(trauma)를 앓고 있는 어른들처럼 세상에 지레 겁을 먹고, 정년보장이라는 ‘철밥통’ 때문에 교직을 선호한다면 그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를 위해서도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교육 백년지대계(敎育 百年之大計)라는 진부한 명제(命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교육은 나라의 흥망까지도 좌우할 수 있을 만큼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핵심 변인이다.
더구나 국가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핵심 아젠다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교사들이 선도해야할 교육의 수월성 확보는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안위를 앞세우는 ‘속 좁은 젊은이’들이 장차 교단에 서게 될 때, 그들에게서 배운 아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시대가 요구하는 창발성(創發性)과 도전정신,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갖춘 세계인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
선호도 조사 1위라는 결과를 접하며 솟아나던 교직에 대한 자긍심에, 뜬금없이 동일시(同一視) 학습이론이 ‘오버 랩’되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학생들은 교사의 감정과 사고, 행위를 복사하듯 따르게 된다고 하는데, 학생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하는데, 혹시 나처럼 협량한 (狹量)한 교사들로 하여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을 ‘그저 그런 아이들’로 키워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모쪼록 이런 나의 생각이 ‘걱정도 팔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기우(己憂)나, 정년(停年)이 보이기 시작하는 고참 교사의 노파심(老婆心)이기를 바랄 뿐이다.
고 권 일
삼성여고 교장/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