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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산 노지감귤 처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주 형성된 전국 도매시장별 감귤 경락 가격은 매우 우려할 수준이다. 소비시장 가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서울 가락시장의 경매가격이 10kg 기준 1박스 당 3000원에서 2만6000원으로 무려 8배 이상 엄청난 가격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적정 생산량 조정에 실패했고, 잦은 비 날씨로 인한 일조량 부족으로 당도가 지난해만 못하다. 여기에 열매 솎기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상품과가 많이 생산됐다. 게다가 상품과에 후숙시킨 감귤과 1번, 9번 비상품이 섞여 출하되고 있으니, 정상가격이 유지될 리 없다. 사실 지난 4년간은 적정생산과 비상품 출하 억제로 감귤 제값 받기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처럼 생산.판매 전략이 주효했던 적은 없었다. 적정 양인 56만t이 생산된 데다, 열매솎기가 잘 돼 불량과가 적었고, 철저한 선별 출하로 좋은 가격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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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다. 먼저 제주도의 감귤 적정생산 대책이 성공적이지 못했고, 지난 3~4년간 가격 호조 현상만 믿고 “잘 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열매솎기와 상품 생산에 보다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생산농가 탓이다. 올해 산 노지감귤 생산량은 적어도 60만t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은 58만여t으로 관측하고 있지만, 최대 65만t을 훨씬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최선이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차선책을 강구하면 오히려 이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역시 왕도는 없다. 비상품 감귤 출하를 전면 금지하고, 출하량을 조절하는 것 뿐이다. 가뜩이나 올해 산 노지감귤은 당도가 지난해만 못하다. 농촌경제연구원은 10.0~10.3Bx 정도가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 놨다. 지난해에 비해 0.4~0.6Bx나 낮은 당도다. 상품 감귤의 맛도 지난해만 못한데, 더 신 맛이 나는 불량 감귤이 시장에 밀려들 경우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후숙 감귤과 대과를 포함한 비상품 감귤 출하.유통행위 적발 건수가 지난해보다 갑절이나 되는 109건이나 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 하나 쯤 괜찮겠지” 하고 비상품 감귤을 계속 시장에 내 보내는 일부 중간 상인과 생산 농민이 잔존하는 한 제값 받기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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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농가들은 비상품 감귤 역시 애써 수확한 것인데, 차마 버리리가 애석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비상품 감귤을 버리는 과감한 결단력만이 제주감귤 전체를 살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출하량 조절도 귀가 따갑도록 강조되는 말이다. 이 또한 실천이 어려운 부분이지만, 특히 과다 생산된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적정 출하를 유도해야 한다. 낮은 당도에, 홍수 출하까지 이뤄질 경우 제값 받기는 더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숙 감귤과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귤은 유통되고 있다. 우선 이 두 가지 현안만 타개해도 전체 감귤 농가의 공멸은 면할 수 있다. 사실 감귤유통명령제 도입도 상품성 감귤만 적정 출하해 생산 농가의 소득을 높여주자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생산농가와 상인 및 농.감협이 이를 지키지 않고 계속 비상품 감귤을 섞어 출하하고, 물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이 제도 역시 실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제주도와 농.감협은 이제부터라도 좀 더 비상품 감귤 유통행위 지도.단속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생산농가와 상인들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모두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유통명령제 이행에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