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한라산을 온통 물들이고 있는 형형색색의 단풍과 발아래 수북이 쌓이는 낙엽이 아니더라도, 만추(晩秋)를 알리는 전령(傳令)은 또 있다. 거의 매일 배달되는 청첩장과 일간신문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촉난이 그것이다. 바야흐로 혼인의 계절이 됐음을 실감케 한다.
절기(節氣)상 봄에 예식을 치르는 것이 좋아 보이지마는, 특별히 제주도에서는 늦가을부터 겨울사이에 결혼식을 많이 올리고 있다. 농촌의 바쁜 일손을 피(避)해 ‘농한기를 이용 한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인 것이다. 이러한 관례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지금은 전통적인 양속(良俗)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여름에 잔치를 하는 집을 보면 “이 무더운 철에 분명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로 구나”하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제자들과 고향후배 그리고 친구의 자제들이 많다보니, 주제넘게도 주례를 맡는 일이 종종 있다. 주례사는 누구든 비슷하겠으나, 축의(祝意)와 덕담이 주를 이룬다. “무조건 서로 믿고 참으면서, 양보하고 존중하며 살아라”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녀들도 되도록 많이 낳아라” “어려운 이웃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게끔, 열심히 노력 하여라” “살아가는 동안 명예나 돈을 잃는 것은 인생의 일부 손실에 불과하지만, 건강을 해칠 때에는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 등등이다. 여기에 신랑 신부가 긴장할까봐 우스갯소리도 약간 끼어 넣는다. 자기는 그렇지 못하면서도 예비부부들에게는 당연지사처럼 강조하는 자신을 보면서 ‘위선’이라고 자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부끄러운 심정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백이라도 할라치면, 그런 결벽증에 사로잡혀가지고는 세상에 주례를 설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타박을 준다. 이 말에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튼 주례는 남의 집 경사(慶事)의 집전을 총책임진 사람이기에, 언행에 주의하며 신중하게 처신해야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요즘은 주례를 하면서 자괴감이랄까, 두려운 생각이 들곤 한다. 천학비재(淺學非才)인데다 인품과 덕망이 모자란 것은 더할 나위 없고, 식장 안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광경 때문에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과 내빈께 드리는 인사가 막 끝난 다음이다. 사회자가 느닷없이 신랑 신부에게 지시를 한다. 신랑은 엎드려뻗쳐를 하고, 신부는 그에 대한 응답을 하라는 거였다. 말릴 겨를도 없이 신랑은 이미 “하나 둘” 구령을 붙여가며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고, 신부는 거기에 맞춰 “오늘 밤 기대할 께”를 연발하는 게 아닌가. 친지나 하객 그 누구도 제지하기는커녕, 되레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웃고만 있다. 참으로 민망하고 황당할 노릇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한 키스를 시키기도 하고, 신부를 둘러 안고 춤을 추라고도 한다.
이후부터 주례를 청탁하는 젊은이들에게는 “혼례는 일생에 단 한차례 주어지는 귀중한 의식이기 까닭에, 엄숙하고 경건하게 올려야 한다”며 다짐을 둔다. 심지어는 단상으로 가기 직전에도 당부를 한다. 그러나 잘 듣지 않는다. 이와 같은 돌발행위가 지당한 것처럼, 오히려 주례를 설득하려든다.
혼사를 동양에서는 인륜대사(人倫大事)라 하고, 천주교에서는 혼배성사(婚配聖事)라고 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큰 도리이고, 가장 성스러운 일이다. 이제까지 반쪽씩이었던 남성과 여성이,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결합하면서 한 가정을 이루고 공동의 삶을 창조해가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이 바로 결혼인 것이다. 지성을 다하여 정숙하게 거행하는 자세가 혼배의 진정한 의미와도 통한다. 대학시절 배웠던 심리학 교재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결혼예식을 엄격하게 할수록 이혼율은 반감(半減)한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