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울에서 온 후배와 저녁을 같이 했다. 후배가 술기운이 오르자, 아들의 교육문제를 털어 놓았다. 나이는 11살이었다. 이제 경우 초등학교 4학년아이를 미국까지 보내게 된 후배의 사연이야말로 감동의 TV 다큐멘터리 이다.
그건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가정의 문제였고, 사회문제였다. 후배가 말했다. “진짜 거품은 부동산 거품이 아니라 교육거품이라며, 학생자녀를 가진 모든 가정은 그 거품이 흐름에 따라 요동을 친다는 것이다. 자녀의 교육거품 앞에서는 가정의 정(情)도, 부모의 체면도, 이웃사촌과의 우정도 모두 사양해야 된다는 것이다.
요즘 신세대 엄마들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뱃속에 있는 아기의 정서를 위해 노래 테이프(tape)를 틀어 임신부의 배에 대어주고 영어테이프도 틀어준다.
이 후배는 이런 말도 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아이한테 인지교육을 시키는 엄마도 있어, 자기 와이프(Wife)친구 중엔 7개월 쌍둥이를 가진 엄마가 있는데 보모를 대리고 아이하나씩 안고 수업을 받는단다. 수업 받는 아이들 80%가 졸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영어가 대세라서 외고가 각광을 받고 있고,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도 MBA를 따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너무 심하단 생각이 든다. 대도시에서는 좋은 사립초등학교에 보내기위해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영어유치원에서 안 쳐지게 하기 위해 개인 영어교사를 따로 붙인단다.
사교육에 있어선 부모들의 이성은 거의 마비되어 가는지도 모른다. 어느 TV 현장추적 프로그램에서 전화방 멤버로 적발된 어느 가정주부는 자식의 레슨(lesson)비 때문에 다닌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생각난다. 술자리에서 후배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요즘 한국아빠들의 종류가 네 가지 있고, 노래방 엄마도 있다고 한다. 독수리 아빠, 기러기 아빠, 펭귄아빠, 국내산 기러기 아빠, 노래방 엄마도 있어요.” 경제적으로 풍족한 독수리 아빠는 원할 때 비행기를 타고자식이 있는 곳으로 직행 할 수 있다. 기러기 아빠는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서 다녀 올수 있고, 펭귄 아빠는 그마져도 할 수 없어 밖에 안나간다 것이다. 그리고 노래방 엄마는 이보다 더 못한 경제적 여건으로 노래방 서비스 우먼(woman)으로 사교육비를 버는 엄마란다.
“그럼 국내산 기러기 아빠는 뭐야?”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자식의 사교육비를 벌기위해 아내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아내의 남편이란다. 아이들은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고, 아내는 식당일이나 입주 가정부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집에 ‘거주’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화’는 불가능한 형태의 가족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니라 전쟁 수준이구나, 우리가 어렸을 때 교육 환경이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자식에 대한 교육 불안을 소재로 한 에세이에서 ‘불안’과 ‘공포’에 비롯된 일종의 불안성 장애란 말을 했다. 유학을 보내지 않고 과외를 시키지 않으면 아이가 영영주류에서 이탈할 것 같은 공포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보다 부모가 더 조급 해하고, 불안해 진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가정부 아닌 노래방엄마도 나올 법 하다.
국내산 기러기아빠와 노래방 엄마들이여! 인간의 출세, 성공, 행복으로 이끌어가는 요소는 뛰어난 지식이 아니라 성실한 성격이라는 것은 세사에서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을.......
인간의 행동발달에 대한 세계의 석학 미국의 웨인 W, 다이이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부모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책무는 자녀의 성격을 바람직하게 키우는 것이다. 이것이 자식을 성공하게 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