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안보 현장에서
[세평시평] 안보 현장에서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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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滿山紅葉)! 제주산하가 금빛물결로 출렁이며 곱게 익어가는 가을날, 우리일행은 안보현장답사 길에 나섰습니다.

제주인의 고단한 삶의 역사는 시도 때도 없이 침투하는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환해장성(環海長城)을 두르고 봉수대에 불을 지피며 부단히 애써왔지만 역부족으로 매번 당하기만 하였습니다.

선인들이 왜침에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숱한 고초를 겪었던 역사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지난(至難)한 역사의 교훈은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힘을 가진 자 만이 안보와 평화를 논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지만, 오늘의 우리는 잠시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겸허하게 반성해보는 날이었습니다.

제주경찰청에서 주최한 이 답사 길에는 한국자유총연맹 시·도지부를 비롯하여 안전생활실천시민연대, 제주경찰서연동지구대자율방범대, 제주경찰서보안지도협의회, 여성경제인연합회, 사회복지협의회, 한국청소년제주지방육성회, 제주경찰서중부지구대생활안전협회, 제주경찰서행정발전협의회 등 12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40여명이 함께 동행 했습니다.

맨 처음 들른 곳은 북조선 거물간첩 이선실이 한반도적화통일달성을 위해 1992년 9월 남로당 지령을 받은 간첩 황인호에게 전달하기 위해 미리 제주해안으로 침투하여 수류탄4발, 권총2정, 무전기4대, 실탄120발 등 15종의 장비 159점을 숨겨놓았다가 발각되게 된 서귀포시 토평동에 위치한 드보크(Dvoke)였습니다. 노송 두 그루가 사이좋게 자라고 있는 당시 발견 장소는 고요한 정적이 맴도는 숲속이었습니다. 사각형모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표적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주변에 소나무 두 개씩 붙어 있는 곳은 모두가 지형지물이 고만고만해서 찾아내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들른 곳은 관동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금강산 삼일포의 비경에 견주어 결코 손색이 없다는 황우지 포구입니다. 이곳은 1968년 8월 20일 북한군735부대 제51호 간첩선이 침투했을 때, 군경합동작전으로 장장 여섯 시간 동안 포연탄우(砲煙彈雨)속의 교전을 벌인 끝에 간첩선을 침몰시키고 무장간첩 생포2명, 사살12명, 기관단총14점 포획 등의 성과를 거둔 곳입니다. 2005도에 들어 서귀포경찰서에서 전적비를 세우고 그 때의 전공을 기리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해안절벽 밑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인공동굴들을 보면서 군사요새로 적합한 지형지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한경면 청수리 가마오름에 위치한 평화박물관입니다. 일본군의 만행과 끔찍한 잔학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미로형 세계최대규모의 지하요새동굴은 조선인들을 강제징용 시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조상들의 겪은 고통의 현장을 보고 느끼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캄캄한 막장 안 희미한 등잔불아래서 전근대적인 장비인 곡괭이와 삽만을 가지고 동굴을 파내기 위해 바위산을 뚫다가 힘에 부쳐 쓰러지기도 하고, 일본군의 채찍에 맞아 피를 토하며 숨져간 우리조상의 모습을 보고 말입니다. 가마오름 전체가 지하요새로 만들어져 있어 그 규모가 엄청나지만 원형보전공사가 미비 되어 입구에서 300미터가지 밖에 관람할 수 없도록 만든 게 아쉬웠습니다.

우리의 선인들이 겪은 일제 강점기 36년이라는 고난과 질곡의 세월 속 역사의 상흔을 목격했습니다. 인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시절, 금수처럼 취급당하며 강제노역에 짓밟히고 찢기고 죽임을 당해야 했던 통한의 세월을 모질게 견뎌온 역사의 현장을 말입니다.

조국광복의 기쁨도 잠시뿐, 갑자기 불어 닥친 이념과 이데올로기 대립은 이 땅을 4.3민중항쟁이 본거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무고한 도민 절반이상이 끌려 나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대한민국 비극의 땅, 킬링필드의 주인이 제주인 들입니다.

안보현장을 돌아보면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통한의 설움을 딛고 빼앗긴 땅을 다시 찾고 지켜내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이 따라야 했는가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안보와 평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졌을 때라야 지킬 수 있는 불고불멸의 이치를 재확인했으니까요.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선 자원쟁탈과 영토분쟁으로 전쟁과 테러가 끈일 날이 없지만 안보에 대한 우리정부의 느슨한 대처가 걱정되기만 합니다. NLL도 무시해 버리려는 정부의 안보관을 보며,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해 용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구천을 맴돌고 있을 선열들의 원혼을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요.

그런 정부가 제주를 늘 변방으로 취급하고 경시해 왔기에 제주인의 안보문제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변국이 뚱딴지같은 영유권 주장으로 갈맷빛 청정바다 저 멀리 이어도를 향해 희망의 화살을 쏘아 올리며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던 제주인의 낭만도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닌 가 걱정됩니다.

해군기지문제도 역사의 교훈에서 최적의 대안이 찾아내야 합니다. 도민간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조율하며 뭉쳐야 할 때입니다.

안보를 우선순위에 둔다면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강   선   종
총괄본부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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