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팬이란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것들
[데스크 칼럼] 팬이란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것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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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과 우라와 레즈와의 AFC준결승전에서 일본 우라와 레즈 팬들이 보여준 열성적인 응원모습은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때 붉은 악마가 보여준 응원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운동장을 가뜩 채운 서포터즈의 열성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오색 깃발을 흔들면서 연신 박수를 치며 우라와 레즈의 승리를 기원하는 팬들의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런 서포터즈의 모습의 기원은 한국이다. 한국은 2002 월드컵 때 새로운 응원문화를 전세계에 전파시키며 질서 정연하지만 깔끔하고 웅장하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응원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의 응원문화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이런 모습은 국가대표 경기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프로리그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붉은 악마는 국가대표 선수 착출 문제를 놓고 한때 축구협회와 갈등을 보인 적도 있었다. 이유는 축구협회가 프로리그 활성화에 등한시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검은 옷을 입고 경기장에 입장,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정작 프로축구가 열리는 경기장에 가 보면 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 해봐야 수십, 수백명의 서포터즈만, 목이 터져라 자신들의 홈 팀의 승리를 위해 고함 칠 뿐이다.

이런 응원문화는 분명 우라와 레즈 팬들이 보여준 열성적인 응원모습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플레이오프 대전과 포항과의 경기때 대전 서포터즈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상대방 진영에서 골키퍼를 향해 물병을 내던지는 위협적인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줬다.

그 경기때 골키퍼로 출전했던 김영광 선수는 대전팬들의 던진 물병에 머리를 맞았고, 급기야 도로 물병을 팬들을 향해 투척하는 볼성 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 장면은 선수로서는 당연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 결과 김영광 선수는 6경기 출전정지에다 벌금 600만원에 처해졌다.

대전 서포터즈는 프로축구 상벌위원회에 자신들의 잘못으로 한 선수가 불이익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니 처벌 수위를 낮춰달라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대전 서포터즈는 일단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잘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선수에게만 일방적인 과오를 인정,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일은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다.

외국인 경우 서포터즈의 잘못으로 경기에 지장을 줬다면 홈팀을 상대로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네 사정은 다르다. 프로축구연맹이 서포터즈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적은 없었다. 그저 구두 경고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탈리아 리그를 보라. 과격한 팬들의 난동으로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일을 우리는 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프로축구연맹 규정은 서포터즈들에게는 너무나 관대하다. 이번 대전-울산전에서 보여줬던 대전팬들의 물병 투척 행위에 대한 상벌위의 처벌은 고작 대전구단에 서포터즈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것 뿐이었다.

보다 합리적이고 엄중한 처벌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쌍방과실임에도 한쪽에 일방적인 처벌을 가한다는 것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쌍방과실일 경우 쌍방이 책임을 져야 한다. 프로축구연맹은 대전 구단에 대한 확실한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분명히 선수는 돈을 받고 운동장에서 뛰는 존재이기에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프로로서의 책임도 느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며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가 그런 행동을 하게끔 유도한 원인을 고려치 않고 선수에게 너는 프로니까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면 그 선수는 분명히 억울할 것이다. 자기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원인 제공자는 그대로 두고 자신만 억울하게 처벌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불공평하다. 난동을 부리거나 경기를 지연하는 행위, 물병 등의 물건을 투척해 선수들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위협을 가하는 팬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는 관련 규정에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

또한 구단들은 팬들의 이런 돌발적 행동을 막기 위한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병 등 운동장을 향해 투척할 수 있는 일체의 물품 반입을 사전에 차단한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대응방침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팬들의 성숙된 관전문화 정착이다.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상대팀 선수들에게 승리와 패배를 떠나 응원의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성숙된 응원문화가 아쉽다.

고  안  석
체육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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