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자신이 소유한 밭 5500평을 감귤원으로 바꾼 북군 조천읍 김모씨(65)는 요즘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다.
몇 년째 내리막길을 걷는 감귤가격, 언론매체의 '감귤산업 전망 없다'는 식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한라봉 농사에 뛰어들어 볼까하고 생각해 봤지만 초기 투자비용, 장래 시장의 불확실성은 물론 자신만 농사를 짓는 탓에 부족한 노동력이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는 풍작으로 행정당국이나 농협에서 하라는 대로 감귤솎기 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감귤 농사를 시작한 이후 2년마다 치르는 격년제 행사"라며 "해거리로 열매가 적게 열릴 때는 잠잠하다가 대량생산되는 해에는 간벌, 적화, 적과 구호가 마을을 휘젓고 다닌다"면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주 감귤산업의 현실이다.
장기적인 로드맵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그때그때 땜질처방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최근 감귤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5년전인 1980년대 말 자유무역체제를 전제로 하는 우루과이라운드가 이뤄지면서 제주 감귤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1995년 WTO에 이어 제주산 가공용감귤을 수매하던 해태음료가 97년, 일화.롯데칠성이 98년 공장을 제주에서 철수시키면서 사실상 국내산 감귤가공산업은 막을 내렸다.
비상품용 감귤 유통이 서서히 심각한 문제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2003년 칠레와의 FTA협정체결과 시장개방을 마친 중국의 값 싼 감귤도 제주산 감귤을 위협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제주 감귤을 둘러싼 조건이 악화일로를 치닫는 동안 제주도는 1989년 28억1300만원에 불과하던 감귤관련 사업비를 1990년 155억6600만원으로 대폭 늘렸다.
무려 5.5배에 이르는 예산규모다.
1990년이후 지난해 말까지 투입된 총 예산은 6770억7600만원으로 집계됐다.
결과는 2001년 성과여부가 불투명한 감귤가공공장을 비롯 2003년 시행된 유통명령제, 총 감귤재배면적 2만5000여ha 중 4620ha 감귤원 폐원 등 정도다.
김모씨는 "폐원할까 하다가도 막상 다른 농사를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아 감귤나무에 매달리고 있다"며 "소량 고품질 감귤생산만이 제 값을 받는 다는 사실을 모를 농민이 어디 있느냐"고 한숨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