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당장 밥을 걱정하는 민중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정부는 과연 대안 없는 정부일까? 그곳을 다녀온 어느 분은, 차라리 부자들의 헬기를 팔아 굶어 죽어가는 천 명의 아이를 살리는데 돈을 쓰는 포퓰리스트를 기대해 본다며, 방문소감에 힘을 주었다. 좌파 집권도 계속 늘고 있다. 1959년 쿠바의 피델 가스뜨르 집권이후, 2004 우루과이의 따바레 바스께스, 아르헨티나의 네스트로 키르츠네르, 2005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2006 칠레의 미첼 바첼렛, 페루의 알란 가르시아,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떼가,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에콰도로의 라파엘 꼬레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의 재집권까지, 좌파는 더 이상 시대적인 유행이 아니다. 바로 그곳에서 해방신학이 탄생하였으며,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신학(神學)’이란 라틴아메리카 민중을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도 뜨겁다.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팀은 그곳을 다녀와서 “차베스 혁명은 민중이 아래로부터 밀어 올리는 혁명이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김수행 서울대교수도 동네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접 방송하는 카티아방송에 희망을 보았다고, 방문소감을 피력했다. 이처럼 스스로 참여하는, 그곳 주민들의 민주역량은 향상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나 정반대의 주장도 있다. 오세철 연세대교수는 차베스주의는 사회주의의 탈을 쓴 민족부르주아지 분파의 생존전술일 뿐이라며, 한해에 1700여명의 빈곤층 청소년이 범죄로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차베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유럽연합-라틴아메리카 정상회의에서도 “신자유주의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종말에 다다랐다”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답은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유엔총회장에서도 부시 대통령을 ‘악마’ ‘거짓말장이’ ‘독재자’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미국이 세계 인민들을 약탈하고 있다고 연설하고, “우리의 머리위에 드리워진 칼과도 같은 위협을 중지할 것을 호소한다”고 연설하여,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차베스가 왜 이처럼 사람들을 매료시키는가? 많은 시와 소설 및 연극 작품을 쓰고, 군사학교에서 정열적으로 가르쳤고 정부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일삼았던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와 민중복지를 향한 놀라운 정책들 때문이 아닐까?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의 볼리바리안 혁명에 매료되어 있는 지식인들 중에는, 외국인이 더욱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경제는 미국식 모델을 복사해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미국식 모델에 더욱 가깝게 가려는 시도이다. 베네수엘라 경험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좌파의 원인은 정복한 자와 정복당한 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극명하게 구분되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인 이분화에 대한 반발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대안이 없다고들 한다. 특히 진보세력은 창조적 대안을 제시 못하고, 보수세력은 수구세력과 별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차베스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이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난생 처음 대학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비록 비참한 수준이지만 최소한 공중 보건에 접근할 길이 열렸다. 전국에 수천 개의 학교를 세웠는데, 그 학교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집에서 거르는 세끼 식사를 매일 제공한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백만 명 가량의 학생들이 새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양당 체제를 항구적으로 파괴하고, 전통적으로 정치에서 소외되어왔던 광범위한 사회영역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차베스가 성공을 향한 야심찬 발걸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필자에게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좌파인가? 그러면 필자는 대답할 것이다. 좌ㆍ우파를 떠나서 누가 민중들에게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가, 그것이 바로 중요한 대목이라고, 나는 당당하게 대답할 것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