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금강산에서
[세평시평] 금강산에서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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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금강산은 낙조(落照)의 하늘처럼 붉었다.

만물의 형상을 닮은 만물상(萬物象)의 일만 이천 봉은 제 각각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화려한 성장(盛粧)으로 풍악(楓岳)에 걸맞는 절경을 뽐내고 있었고, 산길 아래 새하얀 무명 옷고름처럼 이어지는 물길들도 붉은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선홍빛이 낭자했다.

어디 그 뿐인가.

저마다 감격과 설레임 속에 미답(未踏)의 산길을 걸어가는 등산객들의 눈동자들도, 충혈된 듯 붉은 기운으로 덮여 있었다.

가을산을 삼홍(三紅)이라 했던 이 누구였던가. 산색과 물색, 그리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가을 산의 백미(白眉)가 오롯이 금강산에 담겨 있었다.

금강산은 첫사랑처럼 간절한 그리움에 가슴만 저려오던 ‘아득히 먼 산’이었다.

‘금강산 찾아 가자, 일만 이천 봉’으로 시작되는 유년의 동요(童搖)를 통해 심전(心田)에 처음 뿌리를 내린 금강산은, 그 후 정 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과 겸재 정선의 ‘금강산 전도(金剛山 全圖)’를 거치면서 그리움의 키를 키워왔다.

그렇지만 언제나 마음 속에서만 자랄 뿐 생전에 내 두발로 직접 오르지는 못할 신기루로 치부되는 ‘북녘의 산’이었다.

그런데 2007년 가을, 마침내 금강산이 내게로 왔다.

그것도 엎드리면 코 닿을 정도의 지척에서 나를 반겨 주었다. 관광버스로 비무장지대를 20여분 달리니,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풍성하게 펼쳐진 수려한 산세(山勢)가 나의 시야를 압도해 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북한 사람들이 있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붉은 깃발 너울 속 ‘불행한’ 사람들. 김 일성과 김 정일, 그리고 조선 노동당의 천인공노할 독재 아래 반 세기를 보내고 있는 어둡고 우울한 인민들의 초상이 있었다.

가을이 깊어 가는 금강산 가는 길 풍경 몇 점은 이러했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학교와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은 퇴락을 거듭하고 있었고,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동안 군인들의 통제로 길이 막힌 사람들이 따가운 가을 햇살에 노출된 채, 비포장 농로들에서 오종종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농기계 하나 볼 수 없는 들판에서 낫 하나로 벼를 수확하는 사람들. 삽 한자루씩을 들고 강 한가운데서 모래를 채취하여 트럭에 싣는 사람들. 검게 탄 얼굴에 투박한 군복으로 더욱 초췌하게 보이는 나이 어린 인민군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있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탄식했던 옛 사람이 떠 올랐다.

금강산의 수려함은 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절경으로 손색이 없건만 ,그 곳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절대빈곤의 나락으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지도자 동지’와 한 줌도 안 되는 ‘덜 떨어진 지도부’들에 의해 국제사회의 미아(迷兒)가 된 채, 삶의 지난(至難)함으로 가뿐 숨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회색빛 실상을 멀리서나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강과 봉래, 풍악과 개골로 이어지며 일 년 내내 빼어난 진경산수도를 그려내는 금강산의 사계(四季). 비록 네 시간 남짓의 가을 산행이었지만 산 속에서 ‘명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비록 최고봉인 비로봉은 남쪽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아 원경으로만 만났지만, 회똘회똘 끝없이 이어진 산길을 걸으며 펼쳐지는 낭자한 금강산의 파노라마에 눈이 부셨고 자주 발목을 접질렀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우람한 바위벽들에 새겨진 김 일성, 김정일, 김 정숙. 그리고 조선 노동당의 붉은 망령들을 보며 분단 50여년의 현실을 절감했고, 독재자들의 희생양이 되어 고통받는 동포들의 삶을 안내원들의 행색과 표정들에서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역사 속 왕조시대를 재현하는 코미디같은 저들의 ‘유훈정치’와 ‘세습정치’가 과연 끝이 나기는 할 것인가. 희망마저 차압당한 인민들에게 핵을 앞세운 강성대국은 무엇이며, 인민들에게 주체사상의 최면을 거는 아리랑 공연의 광란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일방적인 퍼주기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도 북녘땅으로 넘어가는 우리의 엄청난 혈세(血稅)가 과연 우리의 소망처럼 북한 사람들의 핍박한 삶에 가문 날 단비처럼 내리기는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일몰에 젖어 더욱 수려한 금강산을 뒤로 하고 남녘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고 남과 북의 배달겨레가 감격의 해후를 하는 날. 그리하여 가난과 핍박의 질곡에 갇혀 지내야 했던 북한 사람들이 사람다운 삶과 자유를 회복하고 희망을 심어 가꾸어갈 수 있는 그 날. 남과 북의 사람들이 이웃사촌들로 ‘마실’을 다니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상생의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고  권  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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