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주민에게 유산(遺産)으로 물려준다. 지도자가 물려준 성공은 주민의 활력이 되고, 지도자가 물려준 실패는 주민의 짐과 빚이 된다. 지도자에게서 힘과 활력을 얻은 주민은 허리를 펴고 살게 되고, 지도자한테 짐과 빚만 잔뜩 넘겨받은 주민은 한동안 등이 휘는 고생살이를 면하기 힘들다.
요즘 들어 태풍 ‘나리’ 상처 등 삶의 답답함을 이기기 위해 오름 등반이 성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등반을 하면서 제일 많은 화두는 건설시책 잘못과 공공지도자에 대한 쓴 소리다. 나도 두 군데 오름 동아리에 가입해서 주말이면 회원들과 섞여 오름에서 사계절을 맞이한다. 어떤 오름을 오를 때는 다른 팀들과 혼합되어 등반하게 된다. 사람들의 표정은 힘들어하면서도 다들 즐겁다. 등반을 하면서 함께하는 말의 주제는 거의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귀 아픈 소리다. 또한 그렇게 등반 객들이 붐벼도 산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는 일이 별로 없다.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의 오름은 나름대로 천혜의 자연경치를 지녔으나 제주사람들이 동네 공원처럼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산들이다. 제주의 오름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철학이 있고 종교가 있다. 제주의 오름은 등반 객들이 많아 힘들어도 내색을 하지 않으며 귀천을 따지지 않고, 빈부를 구분하지 않고, 찾아오는 목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찾아와 나쁜 기운을 부려놓고 기분 좋은 피곤함을 안고 돌아간다. 어떤 사람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가고, 어떤 사람은 울화를 풀고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씻고, 어떤 사람은 가족과 유명을 달리한 상처에 알맞은 약을 받고 돌아간다.
만약 제주에 오름이 없다면, 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가서 넘치는 에너지와 짜증과 울화와 한숨과 좌절과 슬프고 나쁜 생각들을 부려놓을 것인가? 아마도
제주에도 육지의 대도시와 같이 불화가 많아 질것이며, 지역도심에는 사악한 위락 사업이 더 번창 할 것이고, 알콜(alcohol)중독자, 암 환자들이 많아 질 것이다.
이동하의 단편 소설 ‘앙앙불락’에는 험악하고 야만적인 세상으로부터 크게 상처 받은 주인공이 산에서 위안을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산은 값싸고도 신통방통한 치유력을 지니고 있어서 웬만한 상처들은 금방 상처를 아물게 한다.
산에서 나는 매양 아련한 모태의 향수를 맡았고, 무언(無言)의 풍성한 대화를 나누었고, 한량없는 위로와 격려를 받곤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 나의 생은 좌초하지 않았다. 고 말하며, 산을 종합 병원이라고 비유한다.
또 수녀시인 이 혜인의 산문집 ‘꽃삽’에 이런 대목이 기억된다. ‘수도원을 하나의 산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이 산에서 나 자신을 깊숙이 묻어야한다. 하나의 씨앗이 땅에 묻혀져야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나도 겸손과 인내의 노력으로 나 자신을 묻는 일에서 기쁨을 얻어야 한다.’
만약 수도원이 신을 만나서 자신의 죄를 고하여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곳이라면, 제주의 오름 역시 거대하고 위대한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내리며 몸속의 나쁜 기운을 내놓고 심신의 맑음을 회복하는가? 제주지역 시민들의 정신적 육체적 안녕에 오름이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는 오름이 없음을 상상해봐야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제주지역의 오름은 제주도의 보물이다.
요즘 태풍피해 등 살기도 어렵고, 생활도 각박하고, 비정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지는 요즘 지도자의 리더십(leadership)은 제주 지역의 오름 같은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울화와 짜증을 부려놓고 생기를 되찾아 갈수 있는 그런 오름 같은 지도자가 있다면, 제주 지역의 오름도 좀 덜 힘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등반객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