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놈현스럽다'의 교훈
[김덕남 칼럼] '놈현스럽다'의 교훈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빗댄 신조어 소동

말(言語)은 두 갈래 성질이 있다. 향기와 악취가 난다.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있다. 아름답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다. 어떻게 부리느냐에 따라 향과 격이 달라진다. 반향(反響)은 극과 극을 달리할 수도 있다.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약물의 이치와도 같다.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펴낸 ‘신조어 사전’의 논란을 보고 들으면서 되새겨지는 느낌이 그렇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언론과 누리꾼 등이 사용했던 3500여개의 단어를 묶어 ‘가,나,다’ 순으로 정리한 신조어 사전을 만들어 배포했다. 당시 사회상을 반영했던 유행어들을 정리한 ‘새 말‘ 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통령을 빗댄 신조어가 말썽의 씨앗이다.

기대 저버리고 실망 안겨

‘놈현스럽다’가 불씨다. 듣기에 따라 ‘노무현 답다’ 정도로 이해할만한 말이다. 그러나 뜻풀이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것이 소동의 원인이다. 국립국어원은 ‘놈현스럽다’를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 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러자 청와대 쪽에서 발끈했다.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볼 수 있다”고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국가연구기관에서 어떻게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사전을 펴낼 수 있느냐는 섭섭함일 터다. 이번 신조어 사전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투거나 날치기 등 비신사적인 행동을 일삼는 면이 있다”는 풀이의 낱말, ‘국회스럽다’도 수록돼 있다. ‘검사스럽다’도 있다.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 하는 데가 있다”가 낱말의 뜻이다. 그래서 청와대 등의 불쾌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맞다”고 깔깔대거나 히죽거리며 고소해 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권력 집단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권력집단 조롱받는 사회

대통령을 희화화(戱畵化)하고 권력집단에 조롱기 섞인 냉소를 뿜어내는 사회현상은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 것인가. 긍정적 면도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도에 “나를 코미디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는 말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권위위 벽을 허물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정도로 사회분위기가 자유로워 졌고 부드러워졌음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가원수의 이름이 술집 안주 감으로 씹히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검사 등 사회의 대표적 리더그룹이 ‘비열하고 비논리적 집단’으로 조롱받고 매도당하는 현상도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이런 뜻에서 이들 권력 집단은 이번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소동’을 뼈아픈 교훈으로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 신조어 사전은 역설적이게도 권력집단을 위한 ‘반어적 길라잡이’가 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놈현스럽다’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신조어 사전에 등재 될 수만 있다면, 그런 노력들을 기대할 수만 있다면, ‘신조어 사전’ 뜻풀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김   덕   남 (주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