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침묵'이 필요할 때
[세평시평] '침묵'이 필요할 때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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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님은 갔지만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마지막 구절이다.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들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하여 그 달(月)의 명칭을 정했다. 그 중 12월을 「침묵의 달」이라고 불렀다. 말은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가진다. 침묵은 비생산적이다. 그런데 모든 것들보다 침묵에서 더 많은 도움과 치유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로레토에 모인 가톨릭신도들에게 “모든 신자가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알고 있다”며, “깊은 자선 활동을 했던 테레사수녀조차 이런 ‘하느님의 침묵’으로 고통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테레사 수녀의 서한을 모은 책 ‘나의 빛이 되어 주소서’를 출판한 후 신자들에게 던진 메시지이다. 그는 “하지만 신자들은 때때로 이런 하느님의 침묵을 견뎌 내야하며, 그렇게 해야만 비신도(非信徒)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일본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沈默)」은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선교에 나섰다가 박해를 당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신도들은 신앙을 지키면서 바닷물 속에서 죽어갔다. 이때 선교사는 부르짖었다. “하느님, 이제 저들에게 능력을 나타 내사 이 고통으로 구하소서. 하느님이여, 당신은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그 때 들려오는 뚜렷한 음성이 있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을 뿐이다”

엘리 위젤은 그의 대표작 ‘나이트’에서 아이슈비츠에서 겪은 참상을 그리고 있다. 수용소에서 이미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에 압도당한 그는 침묵하는 신을 향한 회의와 절망에 사로잡힌다. 어느 날 밤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율리에크라는 소년이 유대인에게 금지되었던 베토벤의 협주곡을 연주한다. “율리에크의 영혼이 바이올린 활이 된 것 같았”으며 “율리에크는 자신의 목숨을 연주하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율리에크는 뻣뻣한 주검으로 바뀐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밤도 지나가고 새벽이 온다.

칼릴 지브란은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귓속의 귀에” 하는 말이라고 했다. 언어의 극치는 말보다도 침묵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너무 감격스러울 때 우리는 말을 잃는다. 그러나 사람인 우리는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런데 마땅히 입 벌려 말을 해야 할 경우에는 침묵만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일 수 있다. 그와 같은 침묵은 때로 범죄의 성질을 띤다. 옳고 그름을 가려 보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침묵은 비겁한 침묵이다. 비겁한 침묵이 우리 시대를 얼룩지게 한다. 침묵의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된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침묵하고 있을 때면 입의 윤곽은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접고 있는 것 같고, 그러다가 이윽고 말이 시작되면, 그 날개를 펴고 나비는 날아가 버린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는 오직 침묵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침묵에 관하여 많은 말을 하게 한 걸까. “아기 속에는 어른을 위한, 어른의 소란스러운 세계를 위한 그리고 나중을 위한 예비로서의 침묵이 수북이 쌓여 있다.” 전 지구가 소란과 광기로 뒤덮였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씌여진 책이다.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어떤 사물의 실체는 저 침묵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데에 있다. 침묵은 그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이다. 침묵의 세계와 말의 세계는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침묵은 자기 자신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도민의 생각과 뜻이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지도자들이 있어, 잠깐 ‘침묵’을 권장해 보았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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