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사제(司祭)가 되는 길
[세평시평] 사제(司祭)가 되는 길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톨릭(catholic)이란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믿을 수 있는 열린 종교라는 뜻이다. 사제(司祭)는 가톨릭교회에서 주교(主敎)와 부제(副祭) 중간에 있는 성직자이다. 사제직은 초기 교회에서 주로 성찬식의 집전과 관련하여 발전하였으며, 성찬식을 집행하고 고해를 듣고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 하느님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金大建) 신부(神父)는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숱한 박해의 어려움을 당했다. 항상 숨어 지내는 교우들을 찾아 사목(司牧)하였고,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46년 선교사를 영입할 뱃길을 개척하려고 백령도를 찾았다가 관헌에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 반역죄로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선고받아 참수(斬首)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기억한다. 사제단은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 연루 혐의로 체포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자 김승훈·함세웅 등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1974년 9월26일 명동성당에서 1천여명의 신자와 사제들이 모여 결성하였다. 그 후 박정희 정권 시절 사회정의실천선언, 민주구국선언 등을 발표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변함없이 민주화에 앞장서왔다. 초창기 김지하 시인 구명운동,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진상규명 운동, 인민혁명당 사건 진상규명 운동 등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는 데 주력하였고, 87년 5월18일에는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조작됐다는 사실을 폭로해 6·10 민주항쟁에 불을 댕겼다. “사제가 되는 길은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사막을 걷는 것처럼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사제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도 깨달았습니다.” 최근 번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첫 청각장애인 박민서 신부가 신자들에게 전한 말이다. 장애인 사제 박 신부의 탄생이야말로 사회전반에 걸친 편견을 깨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앞서 나아가는 뜻 깊은 일이다. 박 신부는 국내에서는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도 최초의 청각 장애인 사제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박 신부가 사제품을 받기까지는 그야말로 지난한 역경의 길이었다. 오랫동안 장애인에 대한 편견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다 마침내 한국은 물론 아시아 교회 첫 청각장애인 사제가 되었다. 세계교회를 통틀어서도 열다섯 번째다. 개신교는 교단이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어, 청각장애인 목회자만 100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은가? 박민서 신부는 두 살 때 약물 부작용으로 소리를 잃었다. 고등학교 문을 두드렸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운보 김기창 화백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고자 들어간 미술학원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만났다. 1985년 베네딕토라는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학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갔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기지 못했다. 199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청각장애인 신학과정이 폐지되면서 성 요셉신학교에서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미국교회 첫 청각장애인 신부인 토마스 콜린 신부가 성 요한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2004년 마침내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할 수 있었다. 9월은 가톨릭에서 순교자 성월의 달이다. 순교란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치는 행위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103위 성인이 순교하였다. 그리고 9월 26일은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 때 많은 이들이 순교한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9월 20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장하성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정하였다. 순교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확신이란 하느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일 것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