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내빈(內賓)소개
[세평시평] 내빈(內賓)소개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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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출신으로 5명뿐인 제주도의회 교육의원들이, 제주시가 주관하는 행사장에서 ‘내빈’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해 그 위상이 실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들은 29개 소선거구에서 선출된 일반 도의원과는 달리, 국회의원 선거구(3개)에 버금가는 넓은 지역선거구(5개)에서 당선된 선량들로서 이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럼에도 축제나 기념식 등에서 다른 도의원들은 소개를 받지만, 교육의원들은 제외되는 사례가 허다하여 황당해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도내 한 일간지의 만필(漫筆)란에 나온 기사이다. 자리를 함께했던 교육의원들이 얼마나 민망해 하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무리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의전 상 소홀한 대접을 받으면 평생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당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수모(受侮)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의전(儀典)은 주최 측과 손님과의 관계 즉,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찾아온 고객을 접대하는 기술’ 쯤으로 단순하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대인관계이기 까닭에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렇다면 내빈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찾아온(來) 손님(賓)을 의미한다. 국어사전에는 ‘회장(會場)이나 식장(式場) 등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찾아온 손님’ 또는 ‘어떤 모임에 청함을 받고 찾아온 손님’으로 되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행사장에서 식순에도 없는 기이(奇異)한 절차가 관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소위 ‘내빈소개’라는 것이다. 내빈은 위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찾아온 손님’이다. 따라서 내빈을 소개한다면 ‘찾아온 손님’ 전체를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정작 소개되는 사람은 일부 특정인들뿐이다. 그것도 ‘기관 · 단체장’이거나 ‘권력자’ ‘재력가’등에 한정되는 예(例)가 대부분이다. 참석한 사람 모두가 ‘귀빈(貴賓)’일진댄, 이들 전부를 소개하지 않고 ‘윗분’들만 호명하여 박수를 받게 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맹랑한 희극일 따름이다.

왜 이런 사안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선은 주최 측의 과시용(誇示用)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벌이는 행사에 이러저러한 유명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다는 것을 대내외에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음은 당사자 자신이 원 하는 경우이다. 특히 선거직 공인(公人)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 현장이야말로 선거구민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인데, 이를 놓치려 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내빈소개가 참석한 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일련의 ‘예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민주 평등사회에서 이른바 ‘높은 사람’만 예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태로서 ‘차별’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소개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처럼 불쾌한 일도 없을 터이다. 의례가 아니라 큰 결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내빈소개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졸업식 · 수료식과 시상식 같은 장소에서이다. 왜냐하면 졸업생(수료생)과 수상자들은 누가 자신들을 격려하고 축하해 주러 왔는지 궁금해 할 뿐만 아니라, 주최자로서도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식(儀式)과 배려차원에서 소개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떠한 행사장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례허식이나 다름없는 내빈소개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참석자 전부를 일일이 소개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소개 순서를 없애자는 말이다. 행사의 목적에 알맞게끔 엄숙하고 경건하게 집전하거나, 신나고 즐거운 분위기로 장내를 이끌어 간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대한민국 공식행사의 식순을 보면 개식선언 · 국민의례의 순서로 진행돼서 폐식선언으로 끝나지, 식전 내빈소개라는 차례는 없다.

溪山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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