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선거개입 혐의 사건 판결이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대법원을 바라 보는 시선들이 곱지않은 것같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무 말이 없다.
김태환 지사 등 9명의 피고인과 검찰은 지난 4월 12일 광주고법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예규대로라면 당연히 지난 7월 12일 전후 최종 판결이 이뤄졌어야 했다.
대법원은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 하급 법원에는 예규를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는 관대하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야 있을 테지만 이중적 잣대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5.31지방선거 직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중 당선자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적시 필요 사건’으로 지정해 신속하게 처리토록 하급 법원에 지시했다.
개정된 ‘선거범죄 사건의 신속 처리 등에 관한 예규’에 의해 1, 2, 3심 판결을 각각 2개월 씩 모두 6개월 안에 마치도록 했다.
대법원 예규는 규칙을 규정한 것이므로 곧 법이다. 만약 2심 법원이 이 예규를 어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사유서를 요구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사건 선고 기간 2개월을 넘긴 1심 법원이 판결 지연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늑장 판결에 대한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판결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하다.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범위에서의 대법원 재판 정보는 국민에 대한 법률 서비스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지금 이 사건 피고인들의 심정은 말이 아닐 줄 안다.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 지 초조감에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을 것이고, 선고 일정까지 지연되면서 불안감은 더할 것이다.
이를 지켜 보는 도민들의 마음도 편치 못 하다. 유.무죄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빨리 최종 판결이 나와야 공직사회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판결이 지연되는 이유를 알아 보려고 몇 차례 대법원에 전화 취재를 시도했다. 하지만 답변해 줄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과는 전화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통화가 가능했던 사람들의 대답도 “(자신들도) 모른다”였다. 일설에 의하면, 제주도에서 걸려오는 문의 전화가 많아지자 ‘김태환 지사 사건 재판 업무’와 관련해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얘기도 있다.
대법원은 그 동안 사법개혁의 중심에 서 왔다. 공판중심주의와 구술변론주의 재판의 전면 시행과 국민참여재판(배심제) 도입은 획기적인 변화다.
고객 편의에 우선한 법원 민원행정과 법원별 대민 봉사활동, 그리고 언론홍보 강화 등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업적이다.
그는 한때 검찰을 자극하는 등 민감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법원이 갈 방향을 제대로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대법원의 법관 중심주의 사고의 변화는 기대 이하다.
대법원이 이 사건 판결을 늦추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영장주의를 위반해 압수한 증거물에 대해서도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위법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법원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우선 이 사건 압수수색이 위법인가부터 결론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위법은 관련 판례인 ‘형상변경불변론’의 변경까지도 내다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재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 반대일 경우 제2부가 재판을 맡는다.
2부 재판으로 넘어 가면 판례 변경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불법 압수이므로 무죄라는 피고인들의 주장도 상당 부분 설득력을 잃고 만다.
유.무죄의 판단은 대법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스스로 정한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불가피한 재판 지연일 경우 그 이유를 언론을 통해 도민들에게 설명해야 옳다.
국민의 알 권리를 누구보다도 존중하고 실천해야 할 대법원이 계속 함구로 일관한다면 대법원답지 않다. 법관 중심주의 사고가 오히려 대법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김 광 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