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름 바다는 청량하다. 청자의 비색(翡色) 물빛은 눈이 시리고, 물 위를 건너오는 바람은 폐부 깊숙이 삽상(颯爽)하다.
그래서 제주 바다를 만나면 사람 역시 바다가 된다.
홍진(紅塵)에 절어 있던 가슴에 시원(始原)의 파도가 넘실대고, 막막했던 세상의 지평이 ‘개안(開眼)한 심 봉사의 시야’ 처럼 활짝 열린다.
새까만 다공질 현무암 바닷가와 소금밭 같은 모래사장을 걷고 있노라면 놓치고 살았던 삶의 보석들이 하나하나 발에 밟히고, 거울 같은 물 속에 몸을 눕히면 모태(母胎)의 기억과 함께 사랑하는 것들이 물미역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이처럼 제주의 여름 바다는 원시의 생명력으로 사람들을 다시 건강하게 태어나게 한다. 사람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제주의 여름 바다를 동경하고 애써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그네들에게 여름 바다가 그리운 풍경이라면 원주민인 제주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다.
천혜의 풍경 속 바다의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 일용할 양식을 건져 올리는 일터인 것이다.
바다에 배를 띄운 어부는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그물을 건져 올리고, 칠흑의 수면 위에 집어등을 밝혀 고기들을 기다린다.
여름 밤에는 한치와 갈치가 제 철이다.
‘화살골뚜기’라고도 불리는 한치는 다리가 한 치밖에 되지 않아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깔끔한 맛이 일품이라 ‘강원도 오징어’에 비할 바 아니다.
‘럭셔리’한 외모의 은갈치도 밤바다의 진객이다.
‘은갈치색 패션’까지 불러온 훤칠한 은빛 맵시도 눈부시지만, 늙은 호박과 함께 끓여내는 갈치국은 제주의 대표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제주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은 고깃배만이 아니다.
해녀들이 띄워놓은 ‘태왁’들이 초가지붕 위 조롱박들처럼 정답게 흔들거린다.
그렇지만 주인들인 해녀들은 한참 동안 보이지 않는다.
깊은 숨을 참으며 그 시간 바다의 속살을 헤집고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가늘고 긴 ‘숨비소리’와 함께 수면 위로 부상하는 그녀들의 손에 싱싱한 ‘날 것’들이 한 웅큼이다.
소라와 오분자기, 성게… 재수 좋은 해녀는 덤으로 전복을 따기도 하고 큼지막한 고기를 ‘소살’에 꿰차기도 한다.
망사리에 담긴 해산물들은 하나 같이 ‘맛이 끝내 주는데’ 그 중에서도 오분자기와 성게로 끓여내는 ‘제주식’ 뚝배기는 나그네들에게 맛의 진수(眞髓)를 선물한다.
나그네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제주바다의 풍경 뒤에도 가슴 아픈 상처는 있다.
고갈되어 가는 어족 자원을 손끝으로 느끼며 빈 그물을 들어 올리는 날들의 실소(失笑). 출어를 망설이게 하는 천정부지의 기름값. 일출에서 일몰까지도 모자라 밤에도 집어등을 밝히고 비지땀을 흘리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타들어가는 어부들의 팍팍한 가슴이 있다.
더 이상 젊은 해녀를 찾아볼 수 없는 불모(不毛)의 ‘물질’. 큰 돈 들여 박물관 세우고 문화유산이라고 떠들면서도 정작 사라지는 해녀에는 속수무책인 불임(不妊)의 해녀 대책. 달랑 태왁 망사리 하나 지팡이 삼아 저승길 같은 심해(深海)를 오르내렸지만 끝내 펴지지 않는 살림에 잠수병만 깊어 가는 늙은 해녀의 소금기 어린 질긴 숨비소리가 있다.
제주 여름 바다의 풍경(風景)과 상처(傷處). 그 곳 어디에서도 애정의 시선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고 권 일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