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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각종 문서나 지번(地番)주소에서 이(里)명칭이 영원히 사라진다. ‘도로명 등 표기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서다. 정부는 ‘생활지리 정보 제공ㆍ지리 정보를 통한 지역쇼핑몰 활성화ㆍ물류비 절감으로 인한 물류산업 경쟁력 강화와 재난ㆍ재해 발생 때 신속대응’을 위해 도로명 주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里)명칭을 폐지하는 도로명 주소 전환을 강력히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읍ㆍ면 지역의 이(里)명칭 폐지는 각각의 마을 역사와 전통, 그리고 마을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주지역의 경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을(里) 명칭은 거의가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고유명사다. 이름 이름마다 마을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마을의 전통이 숨쉬고 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그 이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고 마을의 단합과 일치를 통해 역량을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같은 마을의 전통과 역사와 주민단합의 주춧돌이나 다름없는 마을의 명칭을 없애 버리겠다는 것은 역사와 전통에 대한 반역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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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里)명칭을 없애려고 동원하는 정부의 ‘생활지리정보 제공이나 재난ㆍ재해 신속대처, 물류산업 경쟁력 제고’ 등의 이유도 앞뒤가 안맞는 논리다. 현재의 마을 명칭을 사용한다고 이들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마을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일 처리에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里) 명칭을 없애려는 새주소 부여는 그러기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그에 따른 예산만 낭비할 뿐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불편과 혼란 등 부작용이 뻔한 사업인데도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려는 것은 납득하기힘들다. 현재 제주시의 새주소 부여사업이 수년째 혼란과 혼선을 빚는 이유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제주도 당국은 올해부터 2009년까지 사업비 27억원을 투입, 관련 용역을 실시한다고 한다. 정부에서 하라고 한다고 앞 뒤 분별없이 국고를 낭비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그것은 행정의 직무유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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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각 읍ㆍ면 마을 명칭을 없애는 새주소 부여 사업은 일단 접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정부 방침을 거를 수 없어 추진 할 수 밖에 없다면 마을 명칭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현재 알려지기로는 ‘00읍 00리 00번지’가 ‘00읍 **길 00번’으로 변경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주소도 ‘00읍 00리길 00번’으로 새주소를 부여하여 이(里)명칭을 살리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아무튼 최선은 현재의 마을 이름을 그대로 놔두는 일이다. 그대로 놔둔채 편리한 지리정보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수백년 동안 사용해온 마을 이름을 하루 아침에 바꾸려고 엄청난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하책(下策)중의 하책일 뿐’이다. 마을이름이 포함된 지번을 도로이름으로 바뀐다고 물류산업 경쟁력이 확보되거나 재난ㆍ재해 대응능력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