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거짓말
[세평시평] 거짓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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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가죽을 쓴 나귀”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나귀가 산길을 가다가 사자의 가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귀는 그것을 써 보니 아주 격에 어울려 보였다. 나귀가 사자의 가죽을 쓰고 산길을 걸으니까 모든 짐승들이 그를 보고는 바쁘게 도망을 쳤다. 우쭐해진 나귀는 짐승들의 왕으로 행세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여우를 만나 본색이 탄로나고 호되게 곤욕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허위와 가식은 그것이 탄로나지 않는 동안 찬란한 매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벌거벗고 차가운 진실이 허위의 화려한 가면 앞에서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거짓말의 매력을 뒤집으면 흉한 혐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것은 남을 속이는 동안 더욱 자신을 속이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의 거짓말을 통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거짓말을 수없이 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결국 당사자를 옭아매어 노예화하고 말 것이다. 많은 거짓말이 장난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대여행을 하는 사람은 한 아름의 거짓말을 안고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여행만이 아니라 특별한 인생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의 체험담에는 어느 정도 거짓이나 과장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그것은 신선한 쾌락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거짓말로 세인이 인기를 차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장난 삼아 거짓말을 하는 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혐오의 속성이 소멸될 수는 없다. 거짓말로 얻어낸 세인의 인기는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결국 대가를 치러야 할 악의 속성을 세상에 심어 놓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의 위반이나 거짓말은 신의 심판을 인간 세상에 불러들이는 마지막 나팔소리가 될 것이다.”(베이컨) 최근에 학력 위조와 가짜 학위의 추문이 온통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일부 교수들의 학력이 위조되었으며, 그들이 소지한 빛나는 학위가 가짜라는 것이 잇달아 탄로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계의 저명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며, 가짜 예술품이 시중에서 판을 치고 있다. 거기에다 연예계의 수많은 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제일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들은 가짜의 가면을 쓰고 회심이 미소를 지으며 세인을 조롱하여 왔다. 우리 사회는 온통 위조된 학력과 가짜 학위의 범람으로 얼룩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하여 이런 경지에 이르렀을까? 거짓 학력 없이는 자기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각박한 현실이 이런 사기 행각을 조장하였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곳에 우리의 아픔이 배어 있다. 거짓말을 하고 자기 양심을 괴롭히는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능력이나 업적보다 학력과 학위로 인간의 등급을 가르는 현실을 돌파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냉엄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짓말에 대한 책임이 사회에만 있는 것일까? 궁색한 변명을 한다 해도 당사자들의 과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출세와 인기의 방편으로 학력 위조를 일삼았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회 현실이 그들의 죄악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당사자들은 더욱 냉엄하게 자신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진실의 바탕에 기초를 세우는 일이다. 고통을 당하더라도 지금 소중한 내 생명이 살아 있다는 진실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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