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꽃보다 아름다운 이야기
[김덕남 칼럼] 꽃보다 아름다운 이야기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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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찡한 감동 스토리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지독한 외로움에도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빤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고 했다.

그러기에 “누가 뭐래도 이 모든 외로움을 이겨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얼마 전 평생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으면서 모은 수십억원의 재산을 장학금으로 쾌척(快擲)한 어느 할머니의 눈물겨운 ‘감동 스토리’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밤샘 이슬처럼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또 있다. 탈레반에 억류됐던 여성 인질 2명이 풀려날 때 석방대상자로 지명됐던 이지영(36)씨가 다른 여성에게 석방을 양보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시 상큼한 감동의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감동을 받는 건, 그 속에서 향긋하고 숭고한 사랑의 향기와 가치를 발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풂’과 ‘희생’과 ‘양보’라는 사랑의 가치가 깊은 잠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캄캄하고 메마른 인성을 흔들어 깨웠던 것이다.

정치 품격 높인 아름다운 승복

이들과는 다소 다른 ‘감동의 네트워크’지만 최근 부박(浮薄)한 정치판에서 ‘아름다운 패배’를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것은 8월의 폭염을 관통하는 한줄기 시원한 청량제(淸凉劑)나 다름없었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과 환멸이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정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숨통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석패(惜敗)한 박근혜 후보의 깨끗한 승복이 가져다준 코끝 찡한 감동연출이 그것이다.

박후보는 경선 승복 연설에서 경선 패배를 인정하고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선 과정이 너무 치열했고 너무 아슬아슬한 박빙(薄氷)의 승부였기에, 그리고 ‘경선 불복 후 탈당’이라는 악습의 고리가 정치권을 얽어매 왔기에 ‘깨끗한 승복 연설’은 더욱 아름다웠던 것이다.

더 소중한 것 지키려면 버려라

박근혜씨는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사실상의 정치적 승자가 됐으며 경선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정치적 자산을 더욱 튼튼하게 구축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의 수’였다고 해도 그렇다.

다음을 염두에 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정치적 승부수라해도 그렇다. 그것은 아름다운 승복(承服)이었고, 역시 아름다운 패배였다.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나 지지여부에 관계없이 ‘박근혜 승복’을 보고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더러는 ‘정치적 쇼’라고 폄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은근히 그 정신이 더럽혀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드러난 사실을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갖게 마련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더 빛나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포기함으로써 더 소중한 것을 지키고 던짐으로써 더 큰 것을 건지는 사람들이다.

늦더위가 계속되는 8월말에 더위를 식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상쾌하고 다행한 일인가.

김 덕 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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