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여름 여자
[세평시평] 여름 여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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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날씨가 더워진 요즘은 성숙된 여인의 몸매처럼 싱그럽고 생기 있는 초록색 빛깔로 더욱더 반짝거린다.

어느 통계를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싫어하는 계절이 여름이라는데, 유독 남성들에게는 여름아스팔트길이 고호의 그림처럼 이글이글 녹아내리고, 그 위에 뿌려진 물이 증발하는 것 같은 여성냄새에 취하는 계절이다.

남성들은 여성의 향기보다 여성의 땀 냄새가 더 좋은 것이다.

거쉰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중에 나오는 <summer time>이란 곡을 듣을 때마다 여름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밀려온다.

곧 죽을 줄 알면서도 불에 모여드는 반딧불 같은 광기와 비극적인 열정, 끈끈하게 엉켜 삶의 진함이 강열하게 배어 있는 여름 날… 노출된 여성들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파괴를 예감하고 있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차 하는 노출된 여성미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됨 없이 남성들의 시장기를 요기(療飢)시킨다.

어느 연립주택의 S자형 계단 아래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위를 쳐다보며 키득 거렸다.

계단으로 초미니 스커트 입은 여성이 그곳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히히 빨간색 팬티야!”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자 놀란 이 여성은 걸음을 빨리해 3층 출입문 안으로 사라졌다.

개구쟁이들이 짓궂은 장난기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TV광고처럼 ‘보일락 말락’ 애교 떨며 허벅지 정점까지 치마를 올렸으면, 더구나 훤히 보이는 철재 계단에서 속옷정도 보였대서 대수인가 싶은 것 같았다.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여름여자들의 배꼽장식도 아름답고, 매끈하게 뻗어 내린 각선미도 황홀하다.

태어나면서부터 폭신한 요람에서 시작해 침대생활로 굳어진 요즘 여름여자는 S라인 몸매에, 헬스에서 잘 다듬어진 롱 다리, 어깨가 노출된 민소매티를 입는다.

젊은 남성들은 길거리에 숫제 자리를 깔고 앉아 오가는 S라인 미녀들을 여유 있게 한껏 감상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이런 가치관이 변화에 따라 여성들이 미에 대한 집착(執着)도 대단하다.

가히 신앙심 이상이다. 눈썹문신, 쌍꺼풀, 아예 미용 성형수술이 대 유행이다.

그래서 여름여자로 몸매를 과시 할 수 있다면 탓 할 까닭은 없다. 다만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욕심을 부려 자기 체형과는 전혀 조화를 잃은 기형은 되지 않아야 한다.

아름답고 젊어지고 싶은 욕망에 그리고 몇 년 후 늙을 것까지 미리 예방하느라 주름을 너무 당겨 눈을 감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생기나 탄력도 없고, 목소리나 체형은 이미 중년을 한참을 지난 그 여자의 얼굴이 주름살 하나 없이 민듯하다.

어디다 비길까, 그 처절한 모습을! 성숙한 여성의 미는 조화와 균형이고 분위기다.

사람은 나이에 맞게 적당히 주름도 있어야 자연스럽고 우아한 것이다. 이런 대자연의 생리현상을 역행한다는 건 무리다.

요즘 여름여자를 생각하면 절실히 느끼는 것은 균형과 조화이며 개성적인 분위기다.

얼굴과 몸매와 그리고 인생의 깊이가 조화를 이루는 개성적인 분위기를 이룰 수 있을 때 고상하고 기품이 있는 완숙한 여름여성의 미를 과시 할 수 있다.

자신의 살아온 인생, 경험, 교양, 인격, 지성이 융화되어 자신만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술이나 창작 활동도 궁극적으로는 분위기 연출이다. 우리는 전 인생을 통해 ‘나’라는 예술품을 창조, 창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손도 빌릴 수 없는 순수한 나만의 작품이다.

예쁜 얼굴, 늘씬한 몸매는 타고난 것이지만 분위기란 결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각자 가꾸기 나름이다. 자기 연출이요 연마의 결과다.

진정한 여성이 미는 노출된 섹시한 아름다움 보다는 당신이 풍기는 인간적이고 여성적인 분위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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