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
이 가을에 …
  • 강정홍 논설위원
  • 승인 200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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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23일)가 지나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아침 저녁 새바람의 기운이 돈다. 비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미처 그것을 느낄 수 없지만, 가끔 구름 사이로 내미는 햇볕도 노란색으로 변했다.

옛 사람들은 처서 후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고,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했다. 습기에 찬 책을 말리는 포쇄도 이 때에 하며,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산소의 벌초도 이 때부터 시작한다.

▶역시 계절은 속일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뜨거운 열기로 녹일 것 같은 무더위도 한줄기 가을 바람에 밀려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어느새 초가을 밤은 점점 길어지고(不覺初秋夜漸長)/ 솔솔 맑은 바람 쓸쓸함이 더해 가네(淸風習習重凄凉)/ 불볕 더위 물러가고 초가집에 고요함이 감도는데(炎炎暑退茅齋靜)/ 섬돌 아래 잔디밭에 이슬이 맺히네(階下叢莎有露光)

계절의 변화에서 옛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읽었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는 어김이 없다. 아직 더위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것마저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리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어정 칠월이요 동동 팔월’이라 했다. 그만큼 바쁜 때다. 우리 모두 알찬 수확의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여름에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게 정성들여 거둬들여야 한다.

수확은 뿌린대로 얻는다. 땀을 흘린 만큼 열매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런 순리마저 어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뿌린 노력은 변변치 못한데도 많은 것을 얻으려는데서 갈등은 잉태한다. 감귤의 탐스런 열매가 땀흘려 그것을 가꾼 농부의 것이듯, 오늘의 열매는 그것을 예상하여 땀흘려 씨앗을 뿌리고 정성들여 가꾼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흘린 땀방울은 얼마 되지 않은데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욕심은 비극을 부른다.

▶사람의 삶도 섭리에 따라야 한다. 자만과 오기에 들떠 순리를 거역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리석음이다. 요즘의 정치 판도 꼭 그런 꼴이다.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교만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 더욱 인간적이다. 이 가을을 맞아 자연의 순리에 따라 행동하는 지혜를 다시한번 가다듬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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