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 내렸습니다.
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아니었습니다.
불볕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빗줄기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집중호우처럼 쏟아지는 ‘탈레반 인질’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마를 줄 모르는 피눈물이 되어 생이별 가족들의 가슴을 할퀴고 빨갛게 짓무른 마음을 적시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을 경악시켰고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봉사활동에 나섰던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 된지 오늘(7일)로 열 아흐레.
그 사이 두 명은 무참하게 살해된 주검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기에 나머지 21명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질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까무러치기 일쑤입니다.
피멍든 가슴은 이미 숯 덩이처럼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그런데도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은 모두를 더욱 주눅들게 할뿐입니다.
왜 무고한 백성이 이처럼 가슴 찢어지는 고통에 시달려야 합니까.
왜 사랑의 봉사활동이 고통의 가시밭길이 되어야 합니까.
2
마비된 이성과 집단적 광기(狂氣)에 사로잡힌 막무가내 집단의 고집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들을 표독스런 광신적(狂信的) 외톨이로 몰아버린 탐욕스런 강대국의 근육질 오만과 독선을 되 뇌일 필요도 없습니다.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교세(敎勢)확장 경쟁을 벌여온 한국교회의 무모한 선교활동을 건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종교적 성전(聖戰)을 구실로 자행되는 납치나 살해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인공노(萬人共怒)할 만행이기에 그렇습니다.
다만 떳떳한 주권국가로서 당당하게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나라의 처신이 답답하고 조급하여 울화통이 터질 뿐입니다.
정부가 채널을 총 가동하여 탈레반과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죽음보다 더 악독한 고통을 겪고 있는 21명 인질의 무사귀환을 위해 나라가, 백성이, 가족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저력과 한국민의 결집된 역량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 국민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3
“제발 21명의 무고한 한국인들을 아무 탈없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문명한 세상의 평화를 위해 사랑의 힘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지를 세계가 깨닫게 해주소서.
종교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도덕적 판단을 왜곡하거나 그르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이 무모한 신앙의 희생양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세속적 탐욕이 종교의 본질을 변질시켜도 아니 됩니다.
이번 인질사건이 편협한 이념의 촛불에 불을 붙여 “네 탓”의 증오를 퍼 나르는 반동으로 작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평화를 실천하고 희생을 통해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종교와 인종이 다르더라도 인류 공동구원을 위해 서로 인정하고 서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웃이 되게 도와주소서.
그래야 피랍인질이나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국민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은 희망의 적입니다.
희망은 고통을 이기는 묘약이라고 합니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한 21명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염원은 분명 이루어 질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제발 악마의 주술(呪術)같은 이 ‘아프간 비극’을 걷어내 주소서”.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