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제는 어떻습니까”. 며칠 전 피서를 겸해 고향을 찾은 서울의 한 지인이 느닷없이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글쎄요” 라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제주지역 경제론을 펼쳐 나갔다.
그의 말은 단호했다. “제주경제를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를 그는 3가지로 설명했다. 시장의 한계성과 제조업의 취약, 그리고 지역 자금의 역류를 꼽았다.
생산과 소비의 두 톱니바퀴가 맞물려 잘 돌아 가려면 인구가 적어도 80만명은 돼야 하고, 제조업도 환경 문제와 높은 물류비용 때문에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지역 자금의 흡입력이 가장 큰 대형매장은 더 활성화될 것이고, 막대한 판매 대금의 서울 역류로 지역은 자금난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제주시에서 전자제품 판매업을 하다 사업이 잘 안 돼 서울로 진출한 그는 유사한 사업으로 성공했다. 역시 넓은 시장이 큰 호재로 작용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그를 통해 제주경제의 실상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게 하는 기회가 됐다. 사실, 제주지역 경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경제의 양 축인 관광과 감귤을 포함한 1차산업 모두 양적으론 크게 신장했으나 실질소득은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 값 싼 덤핑관광과 부가가치가 낮은 수학여행 등 단체관광이 관광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귤 역시 유통명령제 도입으로 가격안정을 유도하고 있지만, 소득은 기대치만 못하다. 더욱이 FTA로 인해 중.장기 지역경기 전망 자체가 불투명하다.
줄곧 전국 총생산액의 1%선을 유지해 오던 제주지역 총생산액이 0.9% 안팎으로 낮아진 것은 이미 7~8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생산.소득.고용 모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흡한 지자체의 대처 방안이다. 백약이 무효였던 때문일까. 이제는 지역경제 대책에 대해 아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듯하다.
기껏해야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이 추진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외자 유치를 통한 굵직굵직한 관광사업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원래 외자 유치 사업이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사업이다.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고 해서 실행에 옮겨지는 사업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관광 등 개발관련 양해각서가 체결됐지만 상당 부분 허명의 문서로 전락했다.
다행히 약속이 지켜져 외자가 유치된다고 해도 바로 경제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 제주도는 불확실한 외자 유치에 얽매여 눈 앞의 중증 환자를 돌보지 않는 형태의 경제정책에 안주하고 있다.
이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체념보다 더 무서운 적(敵)은 없다. 혹시 10여년 간 추진해 온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의 실종이 해도 해도 안 되니까 아예 체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뉴제주 운동’으로 도민의식을 바꿔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에 비할 수 없다. 전시적이고 선언적인 대책이 아닌, 뚜렷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
뉴제주 운동처럼 추진하는 제주도의 경제정책 전환,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불리한 시장 여건도 지자체와 상공회의소.관광협회 등 경제관련 단체의 타개 의지만 확고하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다. 경제단체와 금융권, 그리고 기업과 근로자들이 제주도의 경제활성화 정책에 적극 동참하면 된다.
꿈의 실현은 추구하는 자에게 찾아 온다. 경제단체의 경제회생 의지만 분명하다면 제주경제의 전국 중상위권 진입의 꿈은 현실이될 수 있다.
회원 간 친목 도모 위주로 운영되는 경제단체의 과감한 변신 역시 필요하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능동적으로 지자체의 경제.관광 정책에 깊숙이 참여해야 시장경제가 더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기업도 스스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성을 높이면서 판로를 개척하고, 고용도 늘려나가야 한다.
도민들도 지역 생산품을 더 많이 구입하고, 재래시장과 골목 가게를 더 많이 이용해야 한다. 아울러 도민 기업과 소규모 점포가 경영난을 겪지 않도록 적절한 자금을 수혈하는 은행의 특수 전략도 필수적이다.
어려운 여건을 극복한 성과일 수록 성취도가 더 큰 법이다. 여건상 더 나빠질 수 있는 제주경제의 반전, 제주도와 경제단체의 양 어께에 달렸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