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좀 더 줘요"
지난 23일 오후 5시 제주시 탑동 세계임마누엘 교회의 무료급식 현장.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있으며 노숙자로 보이는 젊은이가 여기저기 연신 식판을 들고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
노숙자들 사이에도 선.후배가 있는 듯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정한 서열대로 식판을 돌린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모두 50여명.
급식이 시작된 지 채 10분도 안돼 이들에게 실망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합니다 밥이 다 떨어졌습니다"
"조금 일찍 오시지요"
순간 늦게 온 한 노숙인은 허탈한 마음뿐인지 하늘만 쳐다봤다.
역시 맘껏 먹지 못한 사람들도 반찬이라도 달라며 다시 식판을 내민다.
5년째 노숙생활을 해 왔다는 김모씨(58)는 "이제부터는 저녁도 이곳에서 해결할 수 있어 한밤중 허기는 면할 수 있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여기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50여명으로 실직자와 노인들도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홍장수 목사는 "평소보다 많이 준비하는데도 배식 때마다 부족하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두 번씩 먹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전에는 점심만 제공했으나 오늘부터는 저녁도 이틀에 한번씩 준비할 계획"이라고 희소식을 전했다.
제주에는 무료 배식하는 단체가 임마누엘 교회를 비롯 기독교 단체인 '구세군' 등 4곳이 있으며 장소는 탑동과 수요일 단 하루뿐인 제주시청이 유일하다.
구세군 관계자는 "물가는 뛰고 있는데 관공서. 개인 등의 후원은 줄어들고 있어 큰 걱정"이라며 "급식 받는 사람들도 늘고 있어 사회 각계의 많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업자.신용불량자는 늘어가고 있으나 딱히 건설현장 등 일할 곳이 만만치 않아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목포가 고향이라는 박모씨(37)가 제주를 찾은 것은 지난해 여름.
처음에는 막노동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할 작정이었지만 극심한 불경기로 일감이 줄어든 탓인지 외지인인 박씨가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박씨는 "비바림이 칠때가 무척 곤혹스럽다"며 "그 때는 빈 건물이나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청한다"고 말하면서 다가오는 겨울철 노숙생활을 벌써 걱정하는 눈치다.
그는 특히 "올 봄에 배가 너무 고파 대형 마트(무료시식코너)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입구에서 차림새가 이상하다며 입장을 막았을 때가 너무 서글펐다"며 고개를 떨궜다.
오갈 곳이 없는 사람들 중 희망자가 간다는 제주시립희망원의 정원은 105명으로 현재 79명(23일 현재)이 수용돼 생활 중이다.
50대 이상의 알콜 중독자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흡연하는 사람들에 한해 3일에 한 갑 정도를 지급하고 있으나 음주는 반입자체를 전면금지하고 있어 일부는 하루.이틀을 견디지 못해 노숙생활을 자청한다고 희망원 관계자는 전했다.
탑동을 관할하고 있는 제주경찰서 북부지구대에 따르면 부근을 배회하는 노숙자는 28명 정도.
이와 관련 지구대 관계자는 "일부 노숙자는 식당 등에서 무전취식 등으로 지구대로 연행돼 오지만 불쌍히 여긴 업주들의 선처로 대부분 석방된다"며 "특히 탑동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노숙자들로 인해 좋지 않은 이미지가 심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내심 걱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생활고로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며 "빨리 경제가 좋아져서 노숙자들이 사라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