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헤르만 헤세, 그리고 소동파
[세평시평] 헤르만 헤세, 그리고 소동파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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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벽에, 헤르만 헤세의 자화상이 걸려 있습니다.

하얀 중절모에 ‘케주얼’한 옷차림으로, 꽃이 만발한 화원에 물을 주고 있는 노년을 그린 작품입니다.

몇 년 전 서울 나들이에서, 우연히 독일에서 태평양을 건너 온 세종문화회관 ‘헤르만 헤세 초대전’을 감상하는 행운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담배 몇 갑 가격으로 구입한 복사본이지만, 눈길이 자주 머무는 작품입니다.

일몰(日沒)의 잔광(殘光)에 젖어 들어가는 산들이 어깨를 마주하며 이어지는 들판을 조용히 응시하며, 한 손에 물뿌리개를 든 채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그림 속 헤세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이웃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와 국경을 아우르는 지성의 ‘아우라’로, 세계의 독자들을 압도하는 대문호(大文豪)의 근엄한 초상이 아니라, 아침 저녁 마을길에서 만나는 등 굽은 우리 동네 할아버지들의 넉넉한 뒷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헤세의 자화상은 거장(巨匠)의 위압감이 아니라 이웃사람을 만날 대의 친근감으로 다가오고, 이윽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폐한 제 심전(心田)에도, 희망이란 이름의 꽃들이 소리없이 피어납니다.

비록 내일은 커녕 한 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하는 게 사람 일이라, 최근 들어 부쩍 세간에 회자되는 ‘노후 설계’ 만큼 낯간지러운 것도 없지만, 만일 은퇴 후 저에게 건강한 여생이 허락한다면, 헤르만 헤세처럼 자연을 벗 삼아 ‘구름에 달 가듯이’ 살다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헤세의 자화상 옆자리에 걸린 소 동파(蘇 東坡)의 ‘적벽부(赤壁賦)’도, 항상 저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작품입니다.

지금의 교단에 서기 전에 잠깐 지방방송국 기자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병을 얻어 돌아가시게 되어, 부득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장남으로서, 홀로 되신 어머니와 어린 세 동생들을 곁에서 돌보고 지켜주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보도국장님이셨던 이 문교님께서, 이별의 정표로 주신 선물인데, 벌써 25년 이 지났습니다.

제주시 화북동에서 ‘매처학자(梅妻鶴子)’로 은거하시면서, 서귀포의 소암 현 중화(素菴 玄 中和)선생과 함께 제주서단의 쌍벽을 이룬 청탄 김 광추(聽灘 金 光秋) 선생님의 전지 크기 초서 작품입니다.

선생님 생전에 일면식도 없고, 제가 워낙 서예에 문외한이다 보니, 감히 선생의 글씨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드릴 수 없지만, 문자향(文字香)을 접할 때마다 깊은 산사의 쇠북소리처럼 깊고도 그윽하게 가슴을 울리는 여운이 참 좋습니다.

‘천지지간 각물유주(天地之間 各物有主)’로 시작되는 적벽부가, 제게 던지는 메시지 또한 헤세의 자화상 만큼이나 소박합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물건에는 털끝 하나 손 대서 안 된다.

그렇지만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만큼은 욕심껏 소유해도 된다.

그것들은 무진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즐겨도 그치지 않고, 닳아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내용입니다.

동정호(洞庭湖)의 수면(水面)처럼 담담하게 젖어드는 소 동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천명의 나이에도 신기루같은 부귀영화를 쫒아 헤매는 나의 일상들이, 너무나 치졸하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소 동파류(類)의 청빈한 삶이라면, 적수공권에다 천학비재 범부(凡夫)인 저라고, 마음공부만 좀 더하면 누리지 못 할 것 없다는 위안과 자신감이 드는 것입니다.

저만의 공간인 서재에 앉아 한 눈에 들어오는 두 사람의 작품을 완상(玩賞)하노라면, 비로소 인생이란 것의 진면목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운명적인 사회적 존재이기에 군중의 바다에서 아웅다웅하지 않을 수 없고, 제한된 세속의 명리(名利)를 서로 다툴 수밖에 없지만, 다 한 때의 부질없는 한 바탕 꿈이라는 것, 결국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살아갈 때, 그나마 나 자신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특히 시대와 국가를 달리한 헤세와 소동파의 메시지가 절묘하게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것을 엿보고 부터, 제 눈 앞에 걸어가야 할 인생의 지평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솟대처럼 우뚝 선 헤르만 헤세와 소동파가 있는 서재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강 같은 평화가 흐르는 저만의 성소(聖所)입니다.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헤르만 헤세와 소 동파를 제 가까이 두고, 염량세태(炎凉世態)에 휩쓸려 위태롭게 흔들리려는 제 삶의 중심을, 외연(巍然)히 세워 나가려 합니다.

고권일
삼성여고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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