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 경선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 참으로 가관이다.
한솥밥을 먹는 한집안 식구가 적이 되어 나만 살겠다고 극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살벌하고 험악하다.
후보 검증을 철저히 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산 형성 과정의 문제와 도덕성 등 의심이 가는 부분은 검증위를 통해 하나도 숨김없이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두 후보에게 사실상 검증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같다.
무차별 적인 폭로와 고소로 맞대응하고 있어 검증 기구는 있으나마나한 형국이다.
후보 간 가시돋친 설전은 다반사가 돼 버렸고, 이제는 후보 측 폭로전이 점입가경이다.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를,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헐뜯고 폭로하는 게 아니라 당내 경선 후보측끼리 폭로하고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대통령 선거사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 보기 어려운 볼썽사나운 당내 투쟁이다.
양 후보 진영은 상대 후보의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빠짐없이 검증위에 제출하고, 검증위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사실대로 공개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검증위를 만든 것이다.
검증위는 허수아비가 아니다.
후보 진영의 고위 선거관계자 등의 언행과 행태도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측 후보의 장점과 정책과 비전 제시는 뒷전인 채 상대 후보의 약점과 확인되지 않은 비리(?) 폭로에 혈안이다.
일단 폭로부터 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들의 행태는 오히려 이전 대선때보다 더하다.
한건주의로 후보자의 신뢰를 얻고, 당내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폭로 자체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대선에서 보듯 대부분의 폭로가 허위로 밝혀졌다는 점 때문에 국민을 향한 직접 폭로가 아니라 당내 공식기구인 경선 후보 검증위에 폭로하고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 것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 문제만이 아니었다.
당내 주도 세력의 오만과 방자함과 엄청난 불법 대선자금 등도 패인이 됐다.
그런데 요즘 두 후보 진영의 고위 정치인들의 면면은 달라진 구석이 없는 것 같다. 그 밥에 그 나물인듯 하다.
툭하면 폭로전이고, 헐뜯기식 발언이 난무하고, 마치 성난 표범과 같은 얼굴이다.
한나라당내 몇몇 인사들의 지적대로, 어떻게 해서든 당내 경선만 이기면 본선은 거저 먹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청와대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경선에 죽기 살기로 목 매달고 있는 것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한 가정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정당 역시 가정, 즉 제가(齊家)에 해당된다. 정치인들도 각자 마음을 바르게 하고, 집안인 정당을 잘 다스려 바로 잡아야 치국(治國)하고, 평천하(平天下)할 수 있는 것이다.
이ㆍ박 두 후보 중에 누가 당내 경선에 승리한다한들 ‘수신제가’의 자세를 잃어버리면 본선에서 그만큼 경쟁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폭로전은 그만 접고, 검증은 검증위를 믿고 위임하면 된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겠다’는 정책과 비전을 내걸고 당내 경선을 벌여야 한다.
후보끼리 “검증하지 말라는 소리냐”는 말도, “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제하느냐”는 소리 모두 듣기에 거북하다.
마치 싸움닭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식상해 하는 국민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범여권이 과연 후보 단일화를 이뤄낼 지도 큰 관심사다.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먹고 자란다.
그래서 정치도 생물인 것이다.
다 아다시피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는 곳이 정치판이다.
많은 국민들이 범여권 대선 후보 단일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여권도 단일 후보를 냈든 안냈든, 앞으로 후보 검증 절차가 이뤄질 것이고 경선자 또는 후보끼리 폭로전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여권도 그럴 경우 국민들은 흔히 말하는 축제가 아니라(엄밀한 의미에서 선거는 경쟁 그 자체일 뿐, 축제가 아니다) 선거기간 내내 짜증나는 선거판을 보게 될 것이다.
여든, 야든 후보 검증은 당내 검증위에 맡기고, 정책 제시와 함께 불법 선거자금 없이 역대 대선 사상 가장 투명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선언이 시급하다.
후보자들 뿐만아니라, 관련 시민단체와 국민들도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도록 정치권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게 아니다.
수단ㆍ방법 가리지 않고 오직 청와대로 가는 목적만 이루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