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아름다운 퇴장
[김광호 칼럼] 아름다운 퇴장
  • 김광호 대기자
  • 승인 2007.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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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산다. 아름다운 삶과 쓸쓸한 삶,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의 인생을 산다. 역시 가장 보람된 삶은 아름다운 삶이다.

누구나 아름다운 삶을 원하지만, 행동이 생각을 따라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삶은 배려와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할 때 주어진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삶이 곧 아름다운 퇴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인(私人)보다 공인(公人)의 경우 더 그렇다.

특히 대통령 등 최고 지도자의 아름다운 삶과 퇴장은 본인의 영광일 뿐아니라 나라의 자랑이기도 하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처는 총리 시절 과감한 개혁으로 추락하는 영국의 경제를 재건했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영국병을 치유했고, 국제적으로도 영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대통령들도 국민을 무서워하고, 언론에 비친 여론을 의식하며 국정을 펴 왔다. 레이건과 클린턴도 그랬다. 부시 대통령도 힘의 논리로 무리한 대외정책을 펴고 있지만, 국민의 뜻과 여론을 크게 거스리지 않아 무난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이들이라고 자신의 정책과 통치 방법을 비난하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불만이 없고,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어떤 비판이건 국민의 특권인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대응은커녕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국민과 야당과 언론이 잘잘못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이들은 대통령으로서의 삶과 퇴진 모두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더구나 임기를 앞두고 자존심이 상하는 이런 저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아름답게 퇴장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고,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본인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국민이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나타난 국민의 평가는 기대 이하다.취임 초기 높은 지지와 한미 FTA 타결 직후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요즘 노 대통령은 임기 8개월을 남겨 둔 대통령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더 활기찬 모습이다. 분명히 전직 대통령들과 다른 면모다. 전임 대통령들은 이때쯤이면 국정을 마무리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교적 조용히 지냈다.오히려 지나치리 만큼 나서지 않아 답답할 정도였다. 

레임 덕 때문에 영(令)이 서지 않아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다음 대권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보이지 않은 미덕을 보였다.

그러고 보면 임기 말에 너무 영이 서지 않아 국정 혼란이 초래되면서 국민을 불안케 한 전임 대통령들이나, 더 힘이 들어 간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모두 국민의 뜻과 어긋난다.

노 대통령은 최근 기자실 통폐합 조치로 언론과 정치권을 들썩이게 하더니,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공약 등을 비판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결정 통보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이에 맞서 지난 8일 선관위의 ‘선거중립 요구는 위헌’이라고 반박했다. 원광대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특강을 하면서 심지어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 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물론 “언론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에는 일면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 버리고 (다음 정권에) 넘겨주려고 한다”니, 솔직히 섬쩍지근한 생각이 든다.

전임 대통령들도 사사건건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에 불만이 컸지만,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겠다’ 등 과격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해 떨어질 무렵의 저녁놀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작동화 ‘알프스의 소녀’에 나오는 하이디와 할아버지 대화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할아버지는 ‘저녁놀이 왜 저렇게 아름다우냐’는 하이디의 질문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떠날 때의 말”이라고 대답했다. “저녁놀이 아름다운 것은 햇님이 산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도 이제 아름다운 저녁놀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노 대통령에게서 아름다운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있다. 퇴임때까지 불안감 없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원하고 있다.

대선은 정치권과 정부에 맡기고, ‘기자실 대못질’도 없던 일로 해 정부를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새로운 다짐도 듣고 싶어 한다.

그 동안 우리는 쓸쓸하게 퇴장하는 대통령들만 보아 왔다. 노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더 배려하고, 조금 손해보겠다는 초연한 생각을 하면 아름답게 퇴장하는 첫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김   광   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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