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성서 요한복음 14장 27-28절)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평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평화라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팍스(pax)와 샬롬(shalom)이 그것이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던 평화로, 물질적인 만족감이나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는 이런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넓은 땅을 정복했고 지배하였다.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고, 결국 그 힘과 물질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이에 반해 샬롬은 로마 식민백성인 히브리 민족의 것으로, 내적이며 정신적인 것이다.
샬롬은 정의, 복지, 동등, 공유 등에 기초한 평화로 ‘완전하다’ ‘건전하다’ ‘온전하다’ ‘전체적이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샬롬에는 화해, 자유, 희망의 세 요소가 있다. 샬롬은 인간과 인간의 화해가 없이는 이룩될 수가 없다.
세계는 언어의 장벽, 인종의 장벽, 종교의 장벽이 있다. 이 장벽을 없이하는 것은 화해의 역사로서만 가능하다. 참 자유는 자기를 가장 바르고 완전하게 자기가 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은 오늘에서 내일에로의 차원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일에서 오늘로 오는 차원도 있다.
유대인들은 인사할 때 보통 ‘샬롬’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들의 강한 민족성이 깃들여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나치정권에 끌려갈 때 자식들이 귀에다 ‘샬롬’ 한마디를 전해주었다.
그것은 너희는 어디를 가든, 어떠한 어려운 상황을 만나든지 간에 선민 유대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1945년 나라를 다시 찾은 다음 유대인들이 텔아비브에서 만났을 때 또 역시 ‘샬롬’의 인사를 서로 건넸다.
2005년 1월 27일,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에 근거하여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였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도민이 겪었던 폭력과 고통의 기억을 치유하고 나아가 이를 평화를 이끌어가는 대안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분단과 냉전의 역사를 딛고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위한 상생의 교량, 평화의 징검다리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실험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적 분쟁과 갈등을 예방ㆍ해결하는 완충센터로도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평화사업의 하나로 평화와 상생의 미래를 위한 4?의 해결을 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이다.
우리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평화도시로는 일본의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독일의 오스나브뤽, 그리고 스위스의 제네바를 들 수 있다.
히로시마는 1945년 8월 6일 전쟁말기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35만 명이 부상하고 14만 명이 사망한 폐허의 도시였다.
그러나 시의회가 앞장서서 평화도시로 지정하고 평화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쟁터로 20만 명이 희생된 도시다.
그러나 시민들은 오키나와 평화상을 제정하고 평화기념자료관을 건립하였다.
오스나브뤽은 평화를 위해 학문적으로 공헌한 레마르크를 기리기 위하여 1991년부터 매2년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을 시상하고 있으며 매년 10월 25일을 ‘오스나브뤽 평화의날’로 지정, 기념하고 있다.
제네바는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국제적십자 본부와 국제연합 유럽본부 등 주요 국제기관이 위치해 있으며,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각종 국제회의가 열리는 인구 18만의 작고 아담한 도시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주실 것이다.’(성서 마태복음 26장 52절)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