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서울 조계사에서 봉축행사 법요식에 대선후보 주자들이 빠짐없이 다녀갔다.
그들은 수많은 불자와 신도들 앞에서 부처님께 헌화하며 90도 각도로 깍듯이 허리를 굽히고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절하며 발원하였다.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저렇게 간절히 발원하고 있을까? 나는 TV에 나온 그들의 모습을 한 분 한 분 빠짐없이 찬찬히 바라보았다.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발원하고 있을까? 그들의 말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부처님께 간절히 발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고 자기인 나를 위하여 대통령이되게 해달라고 저렇게 간절히 발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느닷없이 궁금해졌다. 둘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자가 아니고 후자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내 눈이 ‘삐끄덕’하게 생겨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조선시대에 유명한 ‘무학대사’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성계가 농담으로 무학대사 얼굴이 꼭 돼지 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 말에 무학대사는 이성계 얼굴이 꼭 부처님 같이 생겼다고 대답하였다.
제가 나쁘게 말했으니 대사님께서도 저한테 나쁘게 말씀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성계의 말에 무학대사 왈, “돼지 눈에는 부처님도 돼지같이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돼지도 부처님같이 보입니다:” 내 눈과 마음이 곱지 못하여 무학대사님 말씀처럼 그렇게 안 좋은 쪽으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이 그리 크게 빗나가지 않음을 확신한다.
부처님 앞에 전에 없이 사뭇 얌전히 서서 헌화하고 합장하여 절하는 대선주자들의 마음속에 한 번들어갔다 나왔다 해보는 것도 나로서는 참 재미있고 흥미롭기 까지 하였다.
아무리 ‘무학대사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들을 곱게 생각하려 해도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음을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들을 바라볼 때 국가와 민족은 뒷전이고 이번 대선에 자기가 꼭 승리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헌화하고 합장하여 기도 하고 있음이 십중팔구는 분명하다고 내 눈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대선 주자들은 이번 봉축행사에 모인 수많은 불자와 신도들이 모두 자기 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자기를 위하여 요긴하게 잘 쓰였으면 하고 빠짐없이 줄줄이 와서 부처님께 헌화한 것이다.
비단 이번 대선주자들 뿐만이 아니다.
정치꾼인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도 매한가지다. 지금까지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나 의원들이 아니고 대통령이나 의원들 자신을 위한 국민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국민이란, 그저 그들을 위하여 쓰여 지는 소모품 쯤으로 여겨 왔을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꾼들이 사기치기위하여 제주도에 내려온다. 지난 5월 22일엔 이미 대통령이 다녀갔다.
선거 때가 되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꾼들이 이곳 제주도에 내려와 크게 선심이라도 쓰는 양 선거용으로 공(公)약 아닌 공(空)약을 한다.
국민의 혈세인 국민의 돈을 가지고 마치 자기 주머니 속 돈인 양 상대방이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능력과 힘을 과시한다.
마치 권투선수나 레슬링 선수처럼 링 위에서 힘자랑이라도 하듯 자기의 파워자랑을 한바탕하고 사라지면 국민들은 운동회가 막 끝난 운동장 한가운데 선 것처럼 마음이 휑하고 씁쓸하다.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안다.
공(公)약 아닌 공(空)약인 것을, 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콧방귀를 뀌며 속으로 웃고 욕한다.
미친놈들. 두고 보자. 공(公)약인지 공(空)약인지. 어쨌거나 나도 부처님 오신 날에 관음사에 다녀왔다.
불교신자도 천주교나 예수교신자도 아니지만 부처님 오신 날이니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녀온 것이다.
12월 25일 성탄절도 예수탄신일이니 어느 교회라도 가 볼 생각이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금년 12월 대선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능력 있고 품격이 갖춰진 훌륭한 대통령을 탄생시켜 주십사고 부처님 오신날에 부처님께 합장하고 기도하였다.
고 길 지
소설/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