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의 자존심 앞에 시급한 지역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가.
김태환 도지사가 지난 14일 오후 해군기지 건설 찬ㆍ반 여론조사 내용을 발표하기 전 의회 간부를 찾아 여론조사 발표 방침을 사전 통보하자 의회 간부들이 도의원 전체 간담회가 끝난 후 발표해줄 것을 당부했다.
도는 “도민에게 약속한 것이니 만큼 여론조사 결과를 신속하게 발표하지 않으면 보안상 문제가 생기는 등의 이유로 어렵다” 며, 이를 일축하고 2시간만에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해버렸다.
양대성 의장 등 의회간부들이 의회 자존심을 건드렸다며 노발대발 반발하더니 22일 오후 열린 추경 예산안을 다루기 위한 임시회에서 양 의장은 예산안조차 상정하지 않은 채 이를 유보해버렸다.
양 의장은 “김 지사의 도의회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이뤄져 진정한 동반자 관계가 복원될 때까지 추경예산안 심의를 보류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사고의 전환’이란 김 지사의 정중한 사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보름간 잡은 추경 예산안 임시회=이보다 앞서 의회는 도가 18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을 제출하자 의회는 이를 심의하기 위해 일찌감치 이달 중순 임시회 회기를 보름간 일정으로 넓게 잡은 것이다.
예산안 제출에 따른 시정연설을 할 요량으로 의회에 나왔던 김태환 지사는 양의장이 ‘예산안 불상정-심의유보’를 선언하자 말 한마디 못하고 되돌아왔다.
김 지사는 이번 시정연설을 통해 도민들에게 추경 예산안 내용은 물론 해군지지 관련된 도민 궁금증을 이번 기회에 도의원은 물론 도민들에게 설명할 참이었다.
제주도가 심의를 요청한 추경 예산안은 한ㆍ미 FTA 협상 체결에 따른 대응전략 및 1차산업 등 경쟁력 강화 지원과 농어민 소득증대에 직결되는 안을 중심으로 시급한 소요 예산 105억원을 포함, 각 분야별 중앙지원사업의 신규 또는 변경된 사항을 반영함으로서 사업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감귤 축산 등 1차산업 분야 말고도 다른 분야의 구체적인 예산을 보면 ▲도시저소득주거환경개선사업 54억원 ▲장애인 생활시설, 노인 요양시설 등 사회복지분야 54억원 ▲자연재해 위험지구 정비사업 32억원 및 국고 보조로 인한 하수처리장 운영비,버스 화물 업체 유가보조비 등 법정 필수ㆍ의무적 경비 등으로 복지 등 민생과 매우 관련깊은 예산안들이다.
■ 대통령은 FTA 후속대책 마련위해 제주 방문과 대조적= 이처럼 시급한 민생관련 예산안이 심의 확정되지 못함으로서 각종 사업추진이 지연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더구나 23일엔 노무현 대통령이 한ㆍ미 FTA협상 타결에 따른 제주도내 감귤농가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FTA에 따른 후속 정책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하는 등 중앙정부 차원의 발빠른 노력이 행해지는데도 불구, 이처럼 FTA 관련 예산안을 지역에선 도리어 도의회가 유보시킨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 해군기지 관련 행정사무조사권 발동=한편, 의회가 해군기지 관련한 국방부와 제주도가 맺은 양해각서안에 대한 실체규명과 기타 해군기지와 관련된 여론조사 적정성 등의 문제를 따지기 위해 발의한 행정사무조사 발동은 의회의 고유권한으로 도민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바람직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가 사실을 은폐하지 말고 솔직히 모든 자료를 공개함으로서 의회의 행정사무조사에 적극 협조, 객관적인 검증으로 도민의혹을 해소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 김 모씨(56ㆍ제주시 건입동)는 “의회가 해군기지 문제와 추경 예산안 심의를 분리시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의회와 도의 고래 싸움에 말랑말랑한 새우등(도민)만 터지는 양상으로 보기가 썩 좋지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