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청바지를 즐겨 입는 여자
[세평시평] 청바지를 즐겨 입는 여자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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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자연은 여성이다. 그 자연이 드라이(Dry)해져가고 있다.

” 오래전, 무심히 읽어 넘겼던 글귀다. 여성이 건조화해지면 세상 또한 삭막해 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이제 21세기 중심에서 여권이 상위풍속도로 급속히 변해가는 문화시장에서 “그래도 여성만은 촉촉해야한다”고 주장 한다면 고루하고 구닥다리 남자라고 욕먹을 말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삶은 여성과 남성이 공존해야 삶이 되고 부드러운 것이다. 한참 전에 유행 했던 노랫말이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여자, 김치볶음 밥을 잘 만드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나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이 노래를 생각해보면 여자의 아름다움을 남성의 입장에서 가사화해서 부르는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여성 없이 남성은 삶이 안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 자연의 섭리는 수컷과 암컷으로 생을 마치도록 하느님의 주신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컷을 위해서라도 암컷은 감성을 키워야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타고나길 감성적이라고 한다. 그것은 섬세하고 민감한 여성 호르몬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감성은 여성에게 주어진 천부적 자본이요, 축복이다. 잘 다듬고 가꾸어야 한다. 메마르지 않게 틈틈이 물도 주고 잘 보살펴야 한다. 언제나 윤기가 흐르고 신선한 감동으로 분위기의 중심에 와 닿게 해야 한다.

여성에게 감성이 메말라 버린다는 것은 생명에 탄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태만 이외 달리 변명 할 길이 없다. 생활에 쫓겨서… 스트레스에 시달려서… 변명이 될 수 없다.

우리들은 어쩌다 잠이 없는 밤, 창틈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설움 같은 것이 가슴 가득히 벅차오르면서 왠지 눈물이 난다. 이런 기분으로 꼬박 밤을 지 샌 소중한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신선한 산소가 부서지는 싱그러운 아침햇살, 2층 옥상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울, 신산공원 구석에 핀 철쭉을 보며 벤치에 앉아 우연히 펼쳐들고 읽은 책의 한 구절, 공원 뒤뜰의 파란 잔디… 이것이 도시의 낭만이요, 여성의 감성이다.

살벌한 경쟁, 공해, 소음으로 찌든 도시 생활에 이런 마음의 여백에 점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축복 받은 인생이다. 그것은 풍부한 감성이 안겨주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신의 선물이다.

감성이 메마른 사람에게는 도시 생활은 그저 삭막할 뿐이다. 느낌이 있어야한다. 삭막한 도심 한 복판에서 기계적으로, 건성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뿐이다.

끔찍한 살인, 난폭한 현장, 광란의 거리, 치열한 경쟁, …이런 걸 다보고 듣고, 그때마다 충격을 받다보니 도시인은 목석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주요이슈는 아파트 세금폭탄, 국전은 뇌물대전(大展), 대재벌 총수가 조폭 동원한 폭력 등 상식으로 이해가 어려운 내용들이 신문을 장식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서민들의 불감증원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감정마비현상이 상당히 광범하게 퍼져 있을 것만 같다. 이런 감정마비 사회를, 프랑스의 문호 카뮈는 <이방인>에서 이미 현대인의 감정마비 현상을 경고 한바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그 청년, 태연히 옆집에서 당구를 칠 수 있었던 그 이방인, 그래서 끝내 햇빛이 성가시다고 살인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하고 또 스트레스가 많아도 우리는 결코 이방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방인의 되지 않기 위해서 감성이 필요하다, 감성은 여성이 주도해야한다.

노래도, 문학작품도, 영화 등 예술세계에서도 감성이 생명이다. 마음의 뜨락에 감성의 윤기가 감돌게 해야 건강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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