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사이버 키즈
[세평시평] 사이버 키즈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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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빠진 딸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두 세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몰두하는 딸 때문에, 걱정이 말이 아닙니다. 결국 아버지는 아내와 상의 끝에 딸을 불러 앉히고, 컴퓨터 사용시간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합니다.

‘평일에는 45분, 주말에는 1시간 이상 컴퓨터 사용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단 학교의 과제물을 준비하는 경우는 시간 제한을 하지 않겠다.’

그 분의 딸이 부모의 가르침대로 컴퓨터 사용을 자제했는지는, 아쉽게도 후일담을 듣지 못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 여느 학부모님들의 고민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놀랍게도 컴퓨터의 황제로 불리우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라는 사실입니다.

올해 열 살인 큰 딸이 ‘비바 피니티’라는 게임에 빠져 하루 두 세 시간씩 컴퓨터에 매달리는 것을 보다 못해, 컴퓨터 사용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제 3의 물결로 일컬어지는 정보기술의 신기원을 연 컴퓨터 소프트 웨어의 개발로 천재성이 빛나는 ‘천하의 빌 게이츠’도, 자녀교육문제에서만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시대와 동·서양을 불문한 ‘부모노릇’의 지난(至難)함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컴퓨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입니다.

특히 ‘인터넷 서핑’을 통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는 일은, 하루 세끼 식사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것처럼, 현대인들이라면 거를 수 없는 삶의 패러다임입니다. 따라서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컴盲)’은, 오히려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문맹(文盲)’보다 더 무지몽매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경구(警句)를 무시한 채, 컴퓨터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컴퓨터에 탐닉하는 청소년들, 이른바 사이버 키즈(Cyber Kids)가 청소년 문화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대지를 호흡하며, 사회구성원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단계별로 사회화(社會化)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가야할 청소년들이, 컴퓨터, 특히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채 혼자만의 밀폐된 공간인 방이나 시내의 PC방에서, 모니터 속 신기루같은 가상(假象)세계에서 소중한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인터넷 서핑’을 통해 유익한 지식정보를 획득하기도 하지만, 곳곳에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는 유해 사이트의 함정에 빠져, 앞날이 창창한 몸과 마음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을 유혹하는 유해사이트일수록 중독성과 폭력성, 사행성의 마력을 갖고 있어, 한 번 그 함정에 빠진 청소년들은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어 지는 내성상태를 겪게 됩니다. 다행히 힘들게 빠져나온다 할지라도 애연가의 경우처럼 금단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빠져드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더구나 컴퓨터 중독은 인간관계 단절로 이어져, 결국 사회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쉽고, 수면장애는 물론 안구건조증, 요통, 두통 등의 신체적 장애는 물론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장애 행동, 사회공포증과 같은 정서적 장애까지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일부 청소년들이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부모나 교사들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기 때문에, 미성년들인 그들에게 손 내밀어 도움을 주거나, 점점 나락으로 침잠하는 그들의 심신을 제어할, 어떠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결국 곪을 대로 곪은 컴퓨터 중독의 병인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환부(患部)로 적나라하게 들어날 때쯤 되서야, 우왕좌왕하며 사후약방문의 처방으로 사태를 수습해 보려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불행히도 그 때는 이미 늦게 됩니다.

최근 회자되는 청소년들의 일탈행동과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조승희 사건도, 전말을 꼼꼼히 반추해 보면 일정 부분 사이버 키즈의 사회부적응과 오염된 사고가 빚어낸 예견된 재앙일 것입니다.

따라서 만시지탄을 멈추고, 청소년 문제의 핵심 아젠다로 사이버 키즈의 문제를 심각하게 수용하여, 청소년들에 대한 컴퓨터 이용 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특히 인터넷 예절인 네티켓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그들의 컴퓨터 공간으로 들어가 그들이 향유하는 프로그램을 점검해 보고, 필요한 경우 간섭이 아닌 적절한 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녀들과의 합의하에 그들만의 밀폐된 공간에 놓인 컴퓨터를 집안의 열린 공간으로 내어 놓고, 필요한 지식정보를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얻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빌 게이츠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자녀의 컴퓨터 사용시간 제한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그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자녀가 컴퓨터로 무엇을 들여다 보는지, 부모가 알고 대화를 나누는 게 바람직합니다.”

고   권   일
삼성여고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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