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아버지와 아들
[김광호 칼럼] 아버지와 아들
  • 김광호
  • 승인 2007.0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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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오륜(三綱五倫)에 있어 오륜의 첫번째 덕목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이다. 가정은 물론 이웃과 사회 발전이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친애(親愛)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아버지와 자식 관계는 가정과 사회문화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자식을 훌륭히 키워야 할 책임이 있고, 자식들은 그런 이버지를 공경하고 본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인지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묘사한 소설과 영화가 많고,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많은 소대원들의 목숨을 구하고 숨진 소대장이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소대원들을 태워 부대로 돌아오던 전차가 다리 난간을 들이받아 강물로 추락했다. 소대원들은 소대장의 기지로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소대장은 목숨을 잃었다.

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도 가슴을 적시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은 더 감동적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먼저 보내면서 “가는 곳에서도 나라를 지키고 있거라. 아버지도 따라가겠다”는 말로 아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죄송해 어쩔줄 몰라 하는 부대원들에게 아버지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미련한 소대장(아들) 때문에 자네들이 욕봤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아버지가 훌륭하면 아들도 훌륭해진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모든 것이 아들에게서 실현됐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아들의 교육과 성공에 대해 끝없는 열정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써 아들을 장교로 키운 평범한 이 시골 농민 아버지의 부정(父情)과 소망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꿈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의 현실 앞에서 누구의 잘못도 탓하지 않았다.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는 것.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것 뿐이었다.

내리 사랑보다 더 큰 치 사랑은 없다고 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본능적이고 신앙적이다. 자식들의 부모 사랑은 의무적인 면이 강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예부터 효자라는 말은 있어도, 아버지가 자식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은 없다. ‘부성애’는 모든 아버지에게 다 있다. 하지만 효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성장한다. 서양의 아버지들처럼 평소 말 수는 많지 않은 편이나, 아버지의 넓은 가슴과 침묵 속에는 높고 깊은 아들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담겨있다.

오래 전에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과 가족애를 그린 미국 영화 한 편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아버지이면서도 마치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처럼 느껴지게 한 영화여서 더 기억이 새롭다.

몬테나주의 아름다운 강변 마을을 무대로 한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노먼에게 플라이 낚시를 배운 형 노먼과 동생 폴은 낚시를 통해 형제애를 다진다.

목사인 아버지는 시인과 교사나 다름없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도 공감했을 테지만, 그의 절제된 생활과 말과 행동의 일치는 전형적인 우리의 아버지의 상과 유사했다.

하지만 형 노먼과 달리 반항적이었던 동생 폴은 폭력배들의 총에 맞아 죽고, 아버지 노먼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그렇지만 그는 슬픔과 회한을 위로하며 가족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인생도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시카코대 교수였던 노먼 매클린의 자전소설을 영화화한 ‘흘러가는 강물처럼’이 주는 교훈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그리고 인생을 강물에 비유한 슬픈 이야기이면서도 아름다운 가족과 인생 이야기이다.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 폭행한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이 11일 밤 폭행.흉기상해.공동감금 등 무려 6개 혐의로 끝내 구속됐다.

그는 구속 직후 “상대방을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짓지 못했던 자신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저처럼 어리석은 아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그야말로 후회해본 들 소용없는 후회다.

그는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두 가지 큰 상처를 줬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복 폭행과 거짓말을 했다. 그는 왜 보통의 아버지들처럼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특별한 아버지였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세상에 자식에게 특별한 아버지란 없다. 그도 보통 아버지임을 자처했다면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모든 아버지와 아들들에게 이토록 큰 실망을 안겨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김승연 회장처럼 어리석은 아버지가 다시 나와 선 안 된다.

김   광   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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