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해군기지 문제를 놓고 끝없는 논쟁을 벌여 왔다. 국가안보와 지역발전을 위해 해군기지가 유치돼야 한다는 도민들이 있는 반면, 경제성이 없는 데다, 위험부담마저 있는 군사시설을 평화의 섬에 들여놔서는 안 된다는 도민들도 있다.
장구한 세월을 두고 찬-반 논쟁을 일삼다보니 기관-단체간, 마을과 마을간은 물론, 심지어 같은 마을 이웃끼리, 그리고 부모 자식 사이, 친구사이에도 의견충돌이 빚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시위를 벌이고 폭력을 휘둘렀다가 법적 제재를 받는가 하면, 인정 넘치던 마을 사람들 간에 반목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제주도민들이 완전히 둘로 쪼개져 치유 불능의 갈등 속으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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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5년이란 긴 시간에 걸친 격렬한 찬-반 논쟁 덕분인지 최근 들면서 해군기지 문제가 차츰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렇듯 심각할 정도의 찬-반 갈등을 해소하는 데 물꼬를 튼 것은 서귀포시 강정 마을이었다. 두 군데의 해군기지 후보 지인 화순리와 위미리의 절대 반대와 달리 강정 마을 주민들은 도리어 해군기지 적극 유치를 자원하고 나섰다. 이유는 해군기지 유치가 마을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마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됐다니 그 의지를 짐작 할만 하다.
특히 주목할 일은 강정리 주민들은 해군기지를 유치함에 있어 어떠한 시민-사회단체나 종교단체 등의 개입을 단호히 거부한 점이다. 강정 마을의 일은 강정 마을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테니 시민-사회단체든 종교계든 가타부타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유치운동은 또 다른 변수를 불러와 찬-반 논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군사기지 반대 의견이 우세했던 화순 주민들 가운데 반대 대책위와 다른 대책위를 만들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주해군기지의 실체를 파악해서 지역사회 발전에 득이 된다면 유치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마도 강정리의 유치운동이 자극제가 된 듯 싶다.
이제 화순-위미-강정 리 등 세 해군기지 후보지 주민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도민들까지도 그 동안의 격했던 찬-반 논쟁을 접고 평심(平心)으로 돌아와 해군기지 문제를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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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신문-방송 등 언론기관들이 서너 차례 해군기지 찬-반 여론조사를 한바 있었다. 시기에 관계없이 그 때마다 찬성 쪽이 단연 많았다. 최근에는 강정 마을이 해군기지 유치를 선언했고, 화순 리의 주민들 중에도 반대대책위 아닌, 다른 대책위를 만들었다. 엊그제 제주도의 1차 여론조사 결과도 찬성 쪽이 우위를 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더 이상 어떤 논쟁과 토론과 여론조사가 필요할 것인가. 설사 앞으로 1년이건, 2년이건 계속 찬-반 논쟁을 벌인다 해도 현재까지의 그것과 달라지지 않을 줄 안다. 지금까지의 토론과 논쟁과 여론조사를 토대로 해군기지 유치여부를 결정해도 크게 잘못되게 빗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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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쪽이든, 찬성하는 쪽이든, 그들 나름대로 고향과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에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반대쪽에서는 자연 파괴, 어장 피해, 주민 불편, 평화의 섬 저해, 전쟁시 불안 등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찬성 쪽에도 그 이상의 명분을 갖고 있다. 우선 국가 안보상의 이유다. 우리의 남방해역은 수출물량의 99%를 수송하는 데다, 제주에서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대륙붕에는 230여 가지의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다. 이어도 부근 주위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의 소지도 있는 곳이다. 유사시 신속 대처를 위해서는 거리가 가까운 제주도에 해군력이 있어야 한다. 시간을 엄청 단축할 수가 있기에서다.
제주 근해의 해난 사고 등 구난을 위해서도 제주 해군기지는 필요하다. 지역 발전과 경제적 이익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해군기지가 어떻게 매듭 되든 찬-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문제는 이 시점에서 찬-반 논쟁을 접고 현재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매듭짓는 게 좋을 성싶다. 그렇지 못할 경우 두 동강이 나 깊게 패인 도민 갈등의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이 너무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기회에 정부에 분명히 주문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해군기지를 유치하게 될 경우 그로 인한 정서적-물질적-환경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적어도 경주 방폐장이나 평택 미군기지에 준 하는 국가차원의 지원을 해 달라는 점이다. 기껏해야 지역지원 시설비로 700억원 정도의 찔끔 지원 식으로 끝내려해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이제부터는 말썽 많은 해군기지 문제도 정리 수순을 밟는 게 좋을 법하다.
서로의 화해와 이해로서 하나된 도민통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康 天 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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