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외국여행
[세평시평] 외국여행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997년, 중국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백두산과 두만강 순례를 마치고 연길에서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의 일이었다. 나의 바로 앞 좌석에는 50대 가량으로 보인는 한국인 관광객 두 사람이 탑승하고 있었다.

기내에서 음료수를 서비스하는 승무원 아가씨가 그들 옆에 다다랐을 때였다. 한국인 두 신사의 입에서 나온 말을 나는 차마 기록할 수가 없다.

그리고 손으로는 아가씨 신체의 특정 부위를 건드리며 키득거리고 웃는다.

그 때 나를 경악케 한 아가씨의 한 마디. “여기는 서울이 아닙니다.” 약간 어눌하지만 또렷한 한국말이었다.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 그 승무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서울의 모습은 과연 어떤 광경일 것인가? 이 여행길에서 나는 이밖에도 여러 차례 쓰라린 장면을 목격하였다.

가는 곳마다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한국인 관광객의 모습에서 단순히 자부심이나 긍지만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만하거나 무례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편견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지금 분단의 쓰라림, 양극화의 고통, 그리고 여러 이익 집단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또한 물질만능과 편리한 이기주의에 빠져 생명이나 인정의 아름다움은 자꾸만 잦아들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마치 바닷가 바위 언저리에 차오르는 밀물처럼 우리 의식을 무디게 덮어왔다.

 아픔조차 자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정작 어렵고 괴로운 장애 요인은 바로 자신에게,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정적인 여행 체험을 이야기했지만, 여행 자체에 과오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은 즐거움이요, 활기를 돋우는 자양분이다.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정신이 도로 젊어지는 샘이다.”(안데르센) 일상 생활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분명히 인생의 시일 것이다. 거기에는 리듬이 있고 감흥과 도취가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외국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신기한 것을 배우는 초등학생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에 들뜨기도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개방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제아무리 흥선대원군이 열 번을 살아온다 할지라도 나라의 문을 걸어 잠글 수는 없다.

우리 나라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출국인 수가 연간 1,160만명이 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2006년 통계) 물론 여기에는 관광이나 단순한 여행이 아니고 공무, 사업, 학업과 연수 등 다양한 목적으로 출국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느 자치단체의 의회의원은 국민의 세금을 탕진하면서 한껏 뽐내는 여행을 즐기기도 하리라. 그리고 출국인 수와 거의 비슷한 외국인들이 한국에 다녀가고 있다.

우리는 세계 속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경쟁력을 키우면서 굳게 살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가슴을 찢는 심정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앞에서 여행객의 부정적 모습을 제시했지만, 최근의 보도 내용을 보면 그것은 문젯거리도 아니다.

여러 가지 명분과 목적으로 외국 여행을 떠나는데, 가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낯뜨거운 목적으로 여행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찌 그뿐이랴? “싹쓸이 구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기도 한다.

골프나 수영은 외국에 나가서 즐겨야 할 만큼 우리 나라의 시설은 열악한 것일까? 경솔한 영혼과 육신이 외국 여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는 모습을 “졸부들의 행진”이라고 보도한 언론 매체가 있다.

우리가 이웃 안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을 회복할 때 모든 부정적인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