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승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을 통해 경찰은 수사력이 얼마나 한심했고 수색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 납치 미수 등 전과 전력 23범의 피의자가 사건 현장 인근에서 기거했는데도 이를 체크하지 못했고 살해된 지승 어린이의 시신도 몇 차례의 경찰 수색에서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나 수색작업이 그만큼 형식에 치우쳤음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연인원 3만여명이 동원됐던 수색작업은 그래서 헛수고나 다름없었다.
범인을 코앞에 두고도 40일간이나 헤맨 경찰의 수사력도 동원된 인력의 수고에 비해 ‘형편없었던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경찰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있다. 사명감을 갖고 수사에 임했다는 수사(修辭)도 나왔다.
“그러나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는 해당 지역 경찰서장의 언급을 수긍하는 도민들은 많지 않다.
특히 “범인을 용의선상에 올린 수사 단계가 늦어졌지만 지승의 시신 발견 후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진행해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해당 경찰서장의 발언은 도민정서와 한창 벗어난 자기위로와 변명일 뿐이다.
물론 그 동안 수사에 진력해온 수사관계자 등 경찰과 수색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노고를 모르지는 않는다.
이런 노고를 감안하더라도 전과 23범의 인면수심(人面獸心) 범인에 의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양지승 어린이의 주검 앞에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것은 그 어린 영혼이나 비통에 빠진 부모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오히려 수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양지승 어린이의 주검을 애도하며 그 부모를 위로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명을 바치겠다고 다짐해야 온당한 일이다.
따라서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이후 도내에서 발생한 3건의 살인사건을 포함한 강력 미제사건들이 많다.
모두 경찰의 수사력 한계를 드러낸 사건들이다.
지승 어린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력 한계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