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아이들의 '피그말리온'
[세평시평] 아이들의 '피그말리온'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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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살이지만, 그래도 학부모님들이 천 길 삶의 벼랑에서조차 목숨 끈을 놓지 못하고 버티는 것은, 죽어서도 눈에 밟힐 사랑하는 자녀들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당신들은 세상의 변방에서 고단한 삶 감내하며 질긴 목숨 부지하는 민초들이지만, 삶의 의미인 자녀들만큼은 어떤 희생 치르더라도 세상의 중심으로 밀어 올려, 남보란 듯 번듯하게 살아가는 모습, 생전에 한 번 보고 싶은 간절한 희원(希願)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래 없는 집에서 태어나고 변변히 배운 것 없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이다 보니, 딱히 자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로지 너나 없이 신분상승과 계층이동의 기능을 한다는 ‘교육의 신화(神話)’ 하나를 믿고, 애면글면 자녀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으며, 그러다 보니 세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묻지 마’식 학부모들의 교육열풍이, 대한민국 시골 구석구석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계층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사실 교육에서의 성취도조차 부모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력에 정비례한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 가지 통계로 검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교육현실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학부모들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부응하는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특히 상급학교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잘 배우고, 있는 집안’의 자녀들에 비해, 성적이 뒤쳐지는 것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교육의 양과 질의 결과물들이 누적되면서, 고등학생쯤 되면 끝내 ‘선수학습 결손(先修學習 缺損)’이라는 치명적 판정까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학부모님들은 절망합니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내 주제에 공부 잘하는 자식이라니’하며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서서히 접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삶이 계속되는 한, 자녀들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 풀에 무너져 자녀들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예단(豫斷)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 끝까지 자녀들의 가능성을 믿고,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풍진(風塵) 세상’에 치여 사느라, 이제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나, 동굴의 어둠, 그리고 마늘과 쑥이라는 시련을 거쳐 인간이 된 웅녀(熊女)의 기적같은 이야기조차 진부하다는 분들께, 조금 낯설어 하실 서양의 피그말리온 신화를 들려 드립니다. 그리스의 키프로스 섬에 ,피그말리온이라는 뛰어난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혼기(婚期)가 꽉 찬 그의 명성을 우러르고 흠모하는 기라성같은 명문 부호 집안의 여인들로부터 청혼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오직 한 여인만 눈에 보였습니다.

바로 그 자신의 이상적인 배우자를 그리며, 상아(象牙)로 깎아낸 석고 조각의 여인상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신전에 나가 그 조각상에 영혼을 불어넣어 인간으로 환생시켜 주기를 기도했고, 마침내 그의 정성에 감동한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는 상아조각의 여인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 넣어 인간으로 살아나게 해 주었습니다.

상아빛 피부를 가진 눈부신 처녀의 탄생, 피그말리온의 아내가 된 그녀의 이름은 갈라테아입니다.

이 신화에 바탕하여, 교육학에서는 피그말리온의 경우처럼 자신에 대한 부단한 자성예언과 동기부여로 목표에 대한 성취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론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앞날이 창창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피그말리온이 되어야 합니다.

학습결손은 물론 일탈행동으로 속을 썩이는 아이들에 대해서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항상 아이들의 내면 깊숙이 내재하고 있을 잠재력의 불씨를 믿고, 칭찬과 격려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성취욕구를 유발시켜 주어야 합니다.

눈 앞에 닥친 대학입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해 단 번에 희망하는 대학의 학과에 합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실패했을 경우에는 재수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쉬운 대로 일단 성적에 맞는 대학에 진학한 후, 전과나 편입학 과정을 통해,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쇠털처럼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자녀에 대한 기대를 접는 대신, 부단한 신뢰와 사랑을 통하여 자녀들의 미래를 함께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부모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행동하고 성장해 나가는 ‘가능 성의 보물창고’입니다.

고   권   일
삼성여고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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