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FTA가 타결된 2007년 4월 2일. 이날은 감귤농가들이 밝힌 ‘제주감귤 사망선고일’이다. 이는 오렌지 계절관세 적용에 따른 제주 한라봉 뿐 아니라 비가림, 하우스 감귤이 직격탄을 맞게 됐고 농축액 관세 즉시철폐는 그동안 비상품과를 가공용으로 돌리던 농가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둘 경우 감귤산업 도미노현상을 초래, 기반 함몰은 기정사실이다. 이 같은 제주의 절박한 심정을 정부와 국회가 몰라주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주감귤농가를 대변하고 있는 지역농협 구성체인 제주감귤협의회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감귤협의회가 주장하는 것은 단 두가지다. 국회비준반대와 한ㆍ미FTA재협상을 통한 계절관세를 조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의 해결에 제주감귤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감귤협의회, 감귤을 쌀과 같이 대해 줘야
"감귤 무너지면 제주도 경제 도산" 불 보듯
그동안 국내 과일수급안정과 감귤 값 안정을 위해 연 3년 감귤유통명령제 발동을 이끌어낸 감귤협의회로서는 이번 굴욕적 한ㆍ미FTA타결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다.
지난 20일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을 비롯 한ㆍ미FTA평가위원회 등 열린우리당 수뇌부가 서귀포를 찾았다.
이날 감귤농가와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강희철 협의회장은 “우리 감귤농협 생산자 단체는 FTA 협상자체를 반대하기보다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면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도민 전부는 감귤을 쌀과 같이 대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결론은 가장 많은 피해를 보게 됐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지금 한ㆍ미FTA타결은 감귤을 희생양으로 하고 있다. 한ㆍ미FTA체결에 따른 감귤피해액이 년 6000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연쇄 도산하고 만다.
우선 감귤산업이 뭉개지면 다른 산업도 다 망한다”고 밝힌 뒤 “현재 한ㆍ미FTA타결로 도민 불만이 고조돼 있다.
이를 알아달라. 정부의 공적자금도 몇 조원씩 지원되는데 농민에게도 그렇게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감귤협의회는 일단 감귤류에 대한 한ㆍ미FTA 국회비준을 절대 처리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게 국회에서 처리될 경우 제주감귤산업은 강 회장이 말대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업희생강요 FTA는 안돼
감귤협의회는 한ㆍ미FTA타결 전후 계속해서 일관된 주장을 펼쳐왔다.
감귤협의회는 지난 16일 농협제주본부에서 제주농협운영협의회(회장 한영택 조천농협조합장), 한ㆍ미FTA감귤특별대책위원회(위원장 강지용)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강희철 회장은 “15만 제주농민은 제주농업의 희생을 담보한 협상내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18일 제주종합경기장 앞 광장에서 감귤산업과 농업사수를 위한 제주농축산인 궐기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이어 “지난 4월 2일 제주농업인은 정부가 발표한 미국과의 FTA협상결과는 심한 충격과 함께 절망 그 자체였다”면서 “감귤은 제주농산물생산액의 53%를 차지하는 제주의 쌀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오렌지 등 감귤류 품목을 쌀과 대등하게 협상품목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정부와 협상단에 끊임없이 요구해 왔지만 우리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18일 제주종합경기장 광장에서 열린 ‘한ㆍ미FTA협상 내용 규탄 및 감귤산업과 농업사수를 위한 농축산인 궐기대회’에서 강 회장은 궐기사를 통해 “농업의 국제화, 개방화추세는 분명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라고 전제 “그러나 수용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개방이 이뤄져야 하며 개방으로 인한 국내적 피해는 최소화돼야 한다”면서 “농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한ㆍ미FTA의 굴욕적인 협상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강력 주장했다.
강 회장은 이날 15만 제주농업인의 이름으로 △한ㆍ미FTA재협상 실시 △농업계의 희생을 담보로 엄청난 혜택을 얻게 되는 산업계의 농가피해 보상과 지원사업에의 적극 동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 투쟁을 전개할 것을 밝혔다.
감귤협의회는 △계절관세 12월~5월로 변경 △감귤류(만다린) 유예기간 20년 수정 △오렌지농축액 유예기간 20년 변경 △오렌지 비계절관세 50% 시작과 유예기간 20년 수정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축산물에 대한 관세철폐기간 20년이상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농업생존방안 정부가 마련해야
그러나 이 촉구안은 지난 20일 서귀포를 방문한 열린우리당 정세균 당 의장의 말에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이날 정 의장은 서귀포에서 가진 농민간담회에서 “한ㆍ미FTA협정문을 수정하거나 재협상할 경우 미국측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 제주에서 요구하는 계절관세 시기 조정을 위한 재협상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 “한ㆍ미FTA의 실익을 전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무엇인가. 결국 제주의 1%는 안중에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눈에 제주감귤은 생색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다. 뒷북치기나 다름없는 생색용 전국투어에 불과한 것이다. 감귤협의회의 주장은 지금의 한ㆍ미FTA협상 타결내용을 파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제주감귤농가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재협상을 바라는 것이다.
강 회장은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 “제주농업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을 정부가 해달라는 것”이라며 “우리들의 이런 마음을 정부가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감귤협의회 이용민 사무국장(농협제주본부 감귤팀장)은 “이제 남은 것은 국회비준인데 국회가 이를 반대처리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며 “지금 제주농업의 운명은 여기에 모아져 있다”고 국회비준반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