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위작 행진 어디까지인가
[문화시평] 위작 행진 어디까지인가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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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있어서의 위작(僞作)의 역사는 미술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할 만큼 오래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팔리지 않는 동료나 제자의 작품에 자신의 서명을 기입하여 도와주었다는 위작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완전무결’한 가짜와 위작 미술품, 요즘 말로 ‘짝퉁’ 미술품들이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에서 진짜 행세를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국제 미술시장의 관측이기도 하다.

판치는 진짜 같은 가짜

이 같은 짝퉁 미술품들은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새삼 들먹일 것도 없이 정말 ‘진짜 같은 가짜’ 그림들로 미술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진짜까지 도태시킬 수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몇 년 전 진위를 놓고 논란이 돼왔던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 수 십 점이 검찰 수사결과 모두 가짜라는 판정이 나와 큰 충격을 준 바 있지만, 최근에도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 그려 유통시킨 미술품 중간 판매상과 ‘위작 화가’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혀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들 그림을 베낀 ‘화가’들은 수 십 년 간 극장 간판 등을 그려온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번 위작사건에는 제주출신 원로화가인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 끼여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술품을 수집하는 한 미술애호가는 얼마 전 변 화백의 A4용지 절반 크기 그림 ‘조랑말과 소년’을 900만 원에 구했다고 한다.

그는 이 그림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 의뢰해 ‘진품 감정서’도 받았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작가에게 보여준 결과 위작으로 판명 났다. 감정전문가까지 깜쪽 같이 속인 가짜였던 것이다.

이번 적발된 가짜그림 판매상과 위작 화가들은 변 화백의 ‘조랑말과 소년’을 비롯, 이중섭·박수근·천경자·이만익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그림 100여점을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위작을 본 이만익 화백은 “그림 솜씨가 미술을 공부한 것 같지만 물감 종류가 다르고 바탕색도 다르다”고 말했고, 변 화백은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그림”이라며 “오래 전부터 ‘가짜 공장’이 있다는 말이 떠돌았는데 실제로 밝혀져 놀랍다”고 촌평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사실 위작은 작고한 작가를 본 뜨는 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겁도 없이 생존 작가의 그림을 베낀 것이어서 그 위작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는 이중섭 그림은 8할이 가짜, 박수근은 4할이 가짜이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통하는 것 중 6~7할 혹은 그 이상이 가짜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니 알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생존 작가의 그림은 일단 본인에게 진품여부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이야 전문가의 감정에 의해 진위를 가릴 수밖에 없지만 생존화가의 작품은 당연히 그림을 그린 당사자에게 확인을 거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할 것이다.

감정에도 한계 드러내

이번에 위작으로 판명된 변 화백의 그림도 미술품감정연구소라는 전문 감정기관에서는 진품으로 결론이 난 상황이었지만 결국 작가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가짜임이 드러나 미술품 감정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까 미술품 감정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정교하게 모사(模寫)된 위작을 진품으로 잘못 판정하고 있는 것.

그래서 미술품 감정은 ‘진실 규명’이 아니라 ‘추정’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위작은 범죄행위다.

작가의 작품성이 훼손되고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가짜를 돈주고 사들인 구매자들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

조금만 유명한 화가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위작, 작품을 돈으로만 보는 세태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 수 없다.

김   원   민
논설위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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