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지사와 공무원 등 9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 공판을 받던 지난 12일 광주에서 만난 한 광주 시민이 내게 던진 질문이 지금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6년 전 제주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50대 중반의 이 남자는 항상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공무원 선거개입 사건 항소심 결과를 전해 듣고 “도대체 제주도지사들은 왜 그러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 곧 헤어졌지만,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의 취지는 이런 것들이었다.
신구범·우근민 전 지사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특히 우 지사가 지사직에서 도중 하차한 점, 현직 지사 또한 항소심에서도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 안타깝고 어처구니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선거법 위반 형태는 다르지만, 불행을 자초한 제주지사 본인들만이 아니라 일부 공무원사회의 선거중립 무감각과 공무원의 선거개입이 가능한 제주사회의 선거풍토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 3박자가 용인 또는 묵인됐기에 불법선거가 가능하지 않았느냐는 게 그의 논리였다.
물론 피고인들은 이 말에 수긍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선거기획에 공모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따라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예상되는 앞으로 3개월까지는 섣부른 예단을 할 수 없고, 피고인들을 죄인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도 여전히 피고인일 뿐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단 이전에 전·현직 지사가 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을 오가고 처벌을 받는 것은 제주사회의 불행이자 외부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일부에서는 제주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예상외로 부각된 원인이 선관위와 검찰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곳에서라면 눈 감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을 수사 의뢰하고 기소해 사건을 확대시켰다는 논리다. 이들의 주장에는 일면 수긍이 가는 점도 있다.
신 전지사와 우 전 지사가 처벌을 받았고, 김 지사까지 재판을 받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이를 두고 아직도 다른 지방에 비해 약한 지자체와 지역세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4월27일 도선관위의 수사 의뢰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검찰도 기소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부터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 역시 검찰의 흔들리는 모습을 여러차례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점은 그 동안 제주타임스에 보도되는 수사관련 기사들을 읽은 독자들도 느꼈을 것이다. 어제 기사는 기소할 것처럼, 오늘 기사는 기소하지 않을 것처럼 보도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검찰의 고민 역시 전ㆍ현직 지사를 잇따라 기소해 처벌을 받게할 때의 부담감때문이었다.
도민사회의 충격을 고려할 것인가, 원칙대로 검찰권을 행사할 것인가를 놓고 장고의 시간을 보냈다.
수사 결과 발표가 5개월 후에야 이뤄진 것도 사실상 그 원인이 가장 컸다. 1심 법원의 사실 심리 공판이 20차례나 열린 점도 기록적이다.
그 만큼 검찰과 변호인 및 재판부의 법리 공방이 치열했다. 2심도 전체적으로 1심 판단의 취지를 그대로 인용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있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혐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단정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끝난 뒤 하려고 한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갓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의 클린 이미지가 퇴색됐고, 많은 도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앞으로 도지사 선거때마다 일부 공무원들의 관행적인 줄서기 행태의 근절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줄을 잘 서면 요직을 차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외직과 한직으로 내몰리는 제주도의 오랜 인사 관행도 옛말이 되는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다.
사실 “왜 하필이면 제주지사들만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이 어려워 적당히 넘어가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의미있는 질문이다.
제주는 상대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취약해 ‘내가 먼저’라는 의식이 강한 지역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좁은 곳이다.
그러다보니 줄을 서서라도 앞서 가려고 하고, 후보끼리 헐뜯다가 모두 낭패를 보기도 한다. 내편, 네편 편가르기 의식도 지연ㆍ혈연ㆍ학연 중시 관행에서 비롯되고 있다.
상대방의 허점이 금방 노출되고 고소, 고발로 이어지는 것도 지역이 좁고, 이런 저런 두터운 연고가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이 계속 작용하는 한 깨끗한 선거문화는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이 사건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관계없이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부분의 도민의식부터 개혁돼야 한다. 정정당당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칭찬하는 사회가 된다면 공무원 선거 개입이니, 관권선거니, 지연ㆍ혈연 선거니 하는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돼야 “제주도지사들은 왜 그렇습니까‘라는 말도 듣지 않게 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