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패러디의 시대’에 산다고 할 만큼 패러디의 표현양식은 광고, 글, 그림, 드라마, 코미디, 영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고, 이것이 또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는 수많은 패러디가 생겨나고 유행이 되고 또 사라지고 있다.
흉내 내기, 뒤집기, 비틀기, 비꼬기, 꼬집기로 무장한 패러디는 대중들의 답답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진정한 재현의 정치학'
패러디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작품 특징이나 문체 또는 운율 등을 모방하여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바꿔 놓는 것을 말한다.
패러디의 역사는 오래 됐지만 현대에는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창조전략의 하나로 정리된다. 패러디가 포스트모던의 요체로 간주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패러디에 관심을 기울여 재현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으로 과거의 이미지를 발굴해내는 ‘행위’에 주력해 왔다.
린디 허치언은 그의 ‘패러디 이론’에서 재현의 복합성과 그 밑에 깔린 정치성을 나타내는 것을 포스트모던 패러디라고 말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현의 정치학’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패러디 되는 작품들의 공통적 특징은 당대나 전대의 인기 작품들이 풍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즉 누가 보아도 알만 한 작품이어야 하며, 이를 ‘의도적으로 차용’ 했다는 납득할만한 객관적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패러디는 크게 조롱의 패러디, 존경의 패러디, 중립의 패러디 등 세 종류의 전형으로 나누어지지만, 이들이 서로 혼재하여 나타나는 등 실상 훨씬 다양한 전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패러디는 조롱이나 경멸조의 것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제 패러디의 의미는 최초의 본질에 대한 독특한 재현이라는 광범위한 뜻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패러디의 범위가 이만큼 넓어진 데에는 오늘날 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인터넷이라는 도구의 기술적 발전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패러디의 문화가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부터라는 게 이 부분 연구자들의 진단이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패러디물을 접하면서 관심도를 높이게 되었고 정치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변모했다는 것.
최근의 정치 패러디의 예만 보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연말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 도중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연설하는 사진이 패러디되어 다양한 사진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이에 국정홍보처가 발끈해 대통령 패러디 사진들을 기사화한 일부 신문을 비난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모 인터넷신문의 대표는 4년동안 사이트에 올린 시사풍자 패러디 200여 개를 엄선하여 ‘노무현의 정체’라는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건강한 웃음 주는 청량제로
그런가 하면 지난 2004년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당시 여성인 야당 대표를 성적(性的)으로 비하한 내용의 패러디가 뜬 사건이 화제가 됐었다.
이 패러디는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 포스터를 원전으로 해서 여배우의 모습에 야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것으로 이 역시 조롱과 경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정치의 해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패러디가 춤을 출 것인가는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는다.
권위주의 시대가 가고 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대통령을 풍자한 유머 시리즈가 책으로 출간되는 등 패러디는 다양하게 대중들이 즐기는 유희적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음은 사실이다.
특히 최근 인터넷 보급과 맞물려 사이버 공간 상에서 매일 수없이 재생산, 재창조되는 패러디물들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패러디가 더 이상 조롱과 경멸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건강한 웃음을 찾아주는 청량제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김 원 민
논설위원/미술평론가